▼ '절벽산책' / 돈 슈나이더 지음 / 사람과 책
실직자의 아픔을 그린 책이다. 어느 대학의 영문학 교수가 어느날 갑자기 해고통지를 받고 2년간 방황하다 목수 겸 페인트공으로서 새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줄거리다.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작자의 자전적 논픽션(Non―Fiction)이다. 그만큼 실감이 나고 생생하게 와 닿는다.
작가는 뉴욕 부근에 있는 콜게이트대학의 영문과 교수로서 해고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때까진 자수성가하여 위로만 신분상승을 했다. 저서와 논문도 많고 학생들로부터 평판도 좋게 얻어 총장으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았을땐 사무착오인줄 알았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자기실력이면 얼마든지 다른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서를 보낸다. 그러나 계속 날아드는 것은 거절통지였다. 차츰 자기확신이 무너진다. 아내와 어린 4남매를 데리고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집을 팔고 시골로 이사를 했다. 92년 봄에 해고되었는데 94년 가을까지 1백여개 대학에 지원해 모조리 딱지를 맞는다. 엄습하는 허탈감과 분노 속에 가장으로서 책임과 체면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자신이 가르쳤던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온갖 좌절과 비참함을 싫도록 맛보다 드디어 대학교수로 재취업하는 것을 포기하고 골프장 청소부로 나선다.
그 뒤 목수 일을 배워 처음엔 시간당 15달러를 받다가 차츰 비싼 일을 맡는다. 목수 겸 페인트 공으로서 숙련공이 되면서 수입도 올라가고 새 일에 보람도 느낀다. 이때 비로소 인생의 행복이란 목수 일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위만 바라보고 살아온 대학교수의 생활이 얼마나 가식에 차고 거품이었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가족들도 만족해 하고 남을 돕는 기쁨도 맛본다.
어느날 갑자기 만나게 되는 인생의 절벽과 새로운 삶의 발견. 그 과정을 솔직하게 또 담담하게 그렸다. 군데군데 섞인 유머감각과 균형잡힌 문체에 푹 익은 인생의 달관이 배어있다.이쯤 되면 실업도 전화위복이다.
최우석(삼성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