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강철 서신’이라는 저서로 대학가에 ‘주사파’운동의 바람을 일으킨 김영환(金永煥)씨와 전 ‘말’지 기자 조유식(曺裕植)씨의 사상전향 반성문은 사상과 이념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겪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지 거의 10년이 됐고 고립 폐쇄주의로 일관하던 북한사회에도 미미하나마 개방의 바람이 불고 있다. 김일성(金日成)의 주체사상은 이제 쓸모없는 유물로 퇴색했다. 김씨나 조씨의 사상적 전향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필연적 선택인지도 모른다.
지난 경험으로 보면, 북한에 대한 환상과 동경은 우리사회 자체가 안고 있는 ‘잘못된 요인과 왜곡된 현상’들이 그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 80년대 주사파가 기승을 부릴 때는 군부정권의 독재가 극에 달한 때였다. 김씨 역시 반성문에서 “한국사회의 여러가지 모순을 비판하다보니 한국사회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되었고 그 대안으로 인간중심의 사상을 내걸고 있는 주체사상에 호감을 갖게 됐다”고 실토했다.
사실 친북(親北)세력은 군부정권에 대한 민주화투쟁을 교묘히 이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 때문에 민주화투쟁은 군부정권에 탄압의 구실을 제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가끔 일반의 오해를 사는 일도 생겼다. 어떻게 보면 군부정권 스스로가 친북활동의 여지를 넓혀준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북한사회의 실상도 비교적 소상히 밝혀지고 있다. 북한체제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동경은 거의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아직 김씨나 조씨가 느끼고 있는 통렬한 사상적 참회와 반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북한체제와 김정일(金正日)정권은 반민중적이고 반민족적이며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김씨의 주장에 대해 오히려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젊은이들 또한 이 사회의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독재와 인권문제는 애써 외면하면서 무조건 북한을 감싸야 옳다는 논리를 펴는 인사들, 북측 논리에 동조하며 주사파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사상적 이념적 갈등때문에 우리사회가 다시 분열하고 대립할 때가 아니다. 사상적 편견이나 이념적 굴절은 남북관계개선에도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보고, 사실대로 평가하면서 무엇이 민족의 장래를 위하는 길인가를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