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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흐르는 한자]華僑(화교)

입력 | 1999-10-11 12:33:00


‘바닷물이 있는 곳에는 華僑가 있다.’ 중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과연 華僑는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어 무려 3000만명을 헤아리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天災(천재)와 人災(인재)에 따른 수 차례의 민족 대이동이 있었다. 그 때마다 생존을 위해 국내와 해외로 인구의 대량이동이 있었는데 대체로 바다를 끼고 있는 푸젠(福建) 광둥(廣東) 산둥(山東)성 등지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해외로 진출하였다. 이 때문에 華僑라면 이 몇 개 성의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는 서해 건너 山東省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가까웠던 탓이다.

중국에서 華僑의 역사는 매우 오래다. 멀리 당나라 때부터 중앙아시아와 동남아 일대에 진출했다고 한다. 그러다 19세기 초 阿片戰爭(아편전쟁)으로 혼란했던 데다 서구열강의 팽창주의로 대량의 인력이 필요하게 되어 華僑의 수가 급증하게 되는데 당시 이미 300만명을 넘어섰다. 마이 주 쯔(賣猪仔·매저자·인신매매된 일종의 준노예)가 대부분으로 쿠리(苦力·막노동자)라고 불렸다. 미국의 대륙횡단철도 건설 당시의 활약은 너무도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1882년(고종19년) 壬午軍亂(임오군란) 때 한국에 파견된 우창칭(吳長慶) 휘하의 군대를 따라 40여명의 상인이 입국한 것이 嚆矢(효시)다. 같은 해 청나라와 通商條約(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華僑유입의 길을 터놓게 된다. 당시 이미 서울과 인천에 약 300명 정도의 華僑가 있었는데 상업을 천시했던 풍조에 힘입어 급속도로 상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과연 그들은 상업에 뛰어나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특히 동남아에서는 한 나라의 경제를 좌우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華僑배척운동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각종 차별정책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10만명을 넘어섰던 수가 지금은 2만2000명 정도로 줄었다. 다들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 흔한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華僑를 ‘비단장수 왕서방’ 쯤으로 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그들의 경제력이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chungsw@mail.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