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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CEO]한글과컴퓨터 전하진사장의 부인 정인성씨

입력 | 1999-10-11 18:39:00


《기업에만 최고경영자(CEO)가 있는게 아니다. 가계를 경영하고 가족의 삶을 풍요롭게 일구는 ‘살림’이야말로 CEO로서의 능력과 지혜가 필요한 일. 가정경영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주부CEO들의 독특한 ‘지식경영법’을 살펴본다》

벤처기업 사장에서 지난해 7월 ㈜한글과컴퓨터의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돼 1년만에 회사의 시장가치를 40배로 불린 전하진사장(41). 대학 졸업반 때 그를 만나 15년째 남편을 ‘키우며’ 가정을 일궈온 아내 정인성씨(39)는 그와의 결혼을 이렇게 정의했다. “남편이 벌여온 사업보다 더 큰 벤처였습니다.”

전업주부인 정씨는 ‘집안의 CEO’로서 가정의 가치를 어떻게 불려왔을까.

★윈―윈 전략

연애시절부터 남편은 영어학원을 열거나 필름현상사업을 벌이는 등 ‘일 내는’데 소질을 보였다. 그래서 무엇이든 자격증을 따 남편의 부도 등 ‘유사시’에 대비하겠다고 생각했다.

성심여대 식품영양학과 졸업후 확보한 영양사 자격증외에 꽃꽂이 사범 자격증을 땄다. 이화여대 꽃예술최고경영자 과정도 마쳤다. 김포공항 라운지의 꽃꽂이를 전담하며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남편이 생활비를 고정적으로 가져다 준 것은 4년이 채 못된다. 사업이 곤란에 빠지면 정씨는 “이젠 내가 벌 차례”라며 남편에게 ‘준비된 커리어우먼’임을 알렸다. 리서치회사의 설문조사원으로 하루 8시간 넘게 걸어다니며 안나(15) 혜나(13) 두 딸의 학원비를 대기도 했다.

★삶은 일종의 벤처

아이들에겐 “하지 말라”는 말 대신 “하려면 뿌리를 뽑으라”고 말한다.

귀를 뚫고 노랑머리로 물들이고 싶어하는 큰딸의 손을 잡고 미장원을 갔다. 앵커우먼이 되고 싶어하는 작은 딸에겐 비디오카메라를 사주고 앵커 흉내를 내는 모습을 찍게 한 뒤 ‘자질’에 대해 토론했다.

두 딸이 컴퓨터게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정씨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벌어진 컴퓨터게임대회에 데리고 갔다. 중학생이 대학생을 이기고 상금을 타는 장면을 보면서 말했다. “게임도 적당히 하면 공부에 방해가 될 뿐이지만 제대로 하면 저렇게 2000만원을 번단다.”

미국 LA에 사는 아이들 이모집에 둘만 비행기에 ‘달랑’ 태워 스스로 찾아가게 하는 등 ‘모험’을 권장한다. 모험도 반복하다 보면 더이상 모험이 아니라는 지론.

남편에게도 언제나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난해 7월 어느날 밤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한글과컴퓨터 최고경영자가 결정돼. 당신이 반대하면 지금이라도 포기의사를 밝히겠어.” 당시 경영하던 벤처기업(지오이월드)이 ‘막 잘나가던’ 참에 위기에 빠진 회사의 최고책임자로 자리를 옮기려는 남편. 내심 불안했지만 정씨는 큰소리로 말했다.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일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잖아?”

★경영의 투명성

아이들에게 집안 사정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아버지의 사업이 얼마나 위기에 처했는지, 그래서 얼마 후엔 학원을 더이상 다닐 수 없게될 지도 모르므로 피아노건 영어건 배울 수 있을 때 배우며 후회 없는 지금을 살아야 한다고.

대신 정씨는 남편이나 아이들도 가계를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달에 한번 △자동차 △아파트 △전화요금 △공과금 △학원 △백화점 등으로 파일을 나눠 지출사항과 영수증을 점검한 뒤 가족 앞에 공개한다.

★몸값 관리

“아내가 아프면 가정이 무너집니다.” 정씨는 정기적으로 유방암 자궁암 등 검사를 받으며 스스로를 챙긴다.

자기개발을 위해 살기도 짧은 인생. 다음은 저녁식사 직전까지 그의 하루 일과다. ①기상 ②남편, 아이들 챙겨보내기 ③설겆이와 청소 ④케이블TV(다이어트음식을 강의하는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CNN뉴스)시청과 필요사항 메모 ⑤영어학원 ⑥조깅 등 운동 ⑦성당에서의 자원봉사 ⑧독서.

“남편이 스톡옵션을 몇 십만주 받는다고 떠들썩하지만 전 늘 남편에게 자랑합니다. 난 당신보다 훨씬 ‘비싼 경영자’라고.”

〈이승재기자〉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