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언더그라운드]테크노 DJ 달파란

입력 | 1999-10-11 19:32:00


최근 국내에서도 붐을 이루고 있는 테크노 음악. 테크노 DJ ‘달파란’(본명 강기영·33)은 2년 전 그 개념조차 희미했던 테크노를 ‘낯설지 않은’ 음악으로 만드는 과정의 정점에 서있었다. 국내 최초의 테크노 솔로 앨범(‘휘파람별’·98년)으로, 테크노 파티 전문 DJ그룹인 ‘아우라소마’의 주도 멤버로, 최근에는 영화음악(장선우의 ‘거짓말’)까지 만들며 ‘테크노 전도사’로 활약 중이다.

원래 그는 80∼90년대를 가로지르는 국내 정상급 베이시스트였다. 80년대 후반에는 신대철(기타)과 함께 그룹 ‘시나위’에서 헤비메탈에 빠졌고, 90년대 초반에는 그룹 ‘H2O’에서 김민기(드럼) 박현준(기타) 등과 모던록에 심취했다.

음악적 실력이나 대중적으로 꽤 ‘잘 나가던’ 록 뮤지션이 왜 갑자기 국내에는 기반도 없던 테크노로 ‘전향’했을까?

“사실 93년 ‘H2O’활동을 접으면서 더이상 음악으로서 록의 장점을 찾을 수 없었죠. 록의 정신이 권위주의적으로 변질되는 것도 싫었구요.”

그는 94년 머리도 식힐 겸 그림을 배워보겠다고 1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 머물렀다. 그런데 거기서 테크노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다.

“당시 유럽은 아예 테크노 붐이더군요. 이러다간 음악적으로 ‘국제 미아’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국내에 들어와 95년 박현준과 함께 네오 펑크 그룹 ‘삐삐밴드’(이후 ‘삐삐롱스타킹’으로 개칭)를 결성해 97년까지 활동하면서 ‘딸기’ 등의 곡에 테크노를 접목해보기도 했다. 그뒤 97년 말 테크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테크노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요즘 번창하고 있는 홍익대 인근의 테크노 클럽들은 생기기도 전이었으며, 지금은 10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PC통신 테크노 동호회(하이텔) ‘21세기 그루브’도 당시에는 하루에 너댓명이 들락거리는 소모임 수준이었다.

공연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97년말 홍익대 인근 클럽 ‘마스터플랜’에서 열린 첫 테크노 공연. 호기심에 클럽을 찾은 손님들은 가사없이 몽롱하게 계속 반복되는 비트에 “야 집어치워!”라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달파란은 처음으로 언더그라운드의 비애를 느끼기도 했다. “개척자라는 타이틀을 얻는 대가가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어요. 제도권(오버)으로의 진출은 커녕 소비자가 없으니 시장이 만들어질 수가 없죠.”

달파란은 오버와 언더는 반드시 같이 가야 하는데 우리 나라 상황은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버는 언더에게 상업적 활로를 터주고, 언더는 오버에게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피’를 줘야하는데 그 길이 전혀 없어요. 이는 TV로 대표되는 매체가 댄스나 발라드 등 오버의 극소수 장르만을 지원하는 데서 기인하죠.”

달파란은 16일 홍익대 인근에 ‘108’이란 테크노 클럽을 열고 최근 후배들과 낸 테크노 컨필레이션(편집) 앨범 ‘techno@kr’의 발매 파티를 연다. 앞으로 이들은 이곳에서 테크노에 당분간 주력할 계획이다. 새밀레니엄에도 테크노 붐이 계속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