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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Business]아이디어로 세계를 바꾼 '괴짜'

입력 | 1999-10-12 18:42:00


실리콘 밸리는 라스베이거스처럼 오로지 미국에만 존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도 유독 평범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경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기를 좋아하며 사회적 기술적인 빠른 변화에 잘 맞는 체질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것 중에서도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그 중에서도 더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 학업부진 고교 퇴학당해

언뜻 보기에 짐 클라크는 새로운 것 중에서도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조건들을 지니고 있다. 그는 텍사스주 플레인뷰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학교 수업에도 무관심해 고등학교 2학년이던 61년 퇴학을 당했다. 그 후 그는 해군에 입대했는데 거기서도 곧 골칫거리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군대에서 치른 수학 시험에서 수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그때까지 자신이 수학에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상관의 권유를 받아들여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8년 만에 학사 학위는 물론 물리학 석사와 컴퓨터 공학 박사학위를 땄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여전히 비참했다. 그가 대학에 간 것은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70년대까지 그는 두 번의 결혼에 실패했고 여러 대학의 교수직을 전전했다. 78년 그는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에 안착했는데, 거기서 그는 자기 연민에 빠지곤 했다.

★ 38세때 그래픽 칩 개발

38세가 되던 해 어느 날 그는 집에 혼자 앉아 있다가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강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그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스탠퍼드의 가장 뛰어난 컴퓨터 공학도들이 갑자기 그의 강의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는 그들을 자신의 개인 프로젝트에 투입했다. 그것은 3차원 그래픽을 실시간으로 처리해 컴퓨터 스크린에 현실과 똑같은 시뮬레이션을 창조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컴퓨터 칩을 개발하는 작업이었다.

81년 그는 이 칩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함께 실리콘 그래픽스라는 회사를 세웠다. 그 회사는 수십억달러 규모로 성장했고 클라크는 수백만달러의 재산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비참했다. 그는 자신이 커다란 대학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회사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리콘 그래픽스는 곧 휴렛팩커드 출신의 에드 매크래큰을 사장으로 영입했고 클라크는 위층의 회장실로 쫓겨났다. 거기서 그는 80년대 내내 아랫사람들을 상대로 매크래큰이 멍청이라서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불평을 하며 보냈다.

★ 텔레컴퓨터 아이디어

그는 실리콘 그래픽스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90년대 초에 그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보통 텔레비전을 컴퓨터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텔레컴퓨터라고 불렀다. 이 아이디어의 요점은 시청자가 블랙박스를 통해 텔레컴퓨터에 명령을 내림으로써 집에서 쇼핑도 할 수 있고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타임워너사가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였다. 타임워너사는 실리콘 그래픽스에 3000만달러를 지불하고 이 쌍방향 텔레비전을 만들도록 했다.

그렇게 되자 정보와 오락 관련 대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너도나도 나서기 시작했다.

94년 12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쌍방향 텔레비전의 첫 시범이 실시될 무렵 클라크는 실리콘 그래픽스를 그만두고 자기 회사를 새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래를 발명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우선 텔레컴퓨터의 새로운 활용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일리노이대를 갓 졸업한 22세의 소프트웨어 기술자 마크 앤드리슨을 영입했다. 클라크는 앤드리슨이 대학시절에 개발한 모자이크라는 소프트웨어를 보고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모자이크는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물건을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클라크와 앤드리슨은 텔레컴퓨터를 위한 아이디어를 계속 쏟아냈다. 그런데 어느 날 클라크가 자기 집 부엌에서 마음이 바뀌었다고 선언했다. 텔레컴퓨터는 시대를 앞서 가는 제품이라서 만드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이었다. 클라크가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었다.

앤드리슨은 모자이크를 대신할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했다. 모자이크의 소유권은 일리노이대가 갖고 있었다. 클라크는 앤드리슨의 대학시절 친구들을 규합해서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스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 이름은 나중에 넷스케이프로 바뀌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클라크의 뒤를 따라 인터넷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클라크는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꿨다.

★ 인터넷 환자기록 고안

클라크는 자신이 큰 회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95년 가을 무렵 내심 넷스케이프와 자기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언젠가 분명히 인터넷 브라우저 사업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내다보고 다른 아이디어를 찾기 시작했다.95년말 클라크는 혈액 색소 침착증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린 것을 계기로 병원을 드나들면서 환자들이 작성해야 하는 수많은 서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의사가 인터넷을 통해 환자의 병력과 보험여부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고, 진료비 청구와 약의 주문도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들고 벤처 캐피털 회사를 찾아갔다. 그는 어느 회사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줄 것인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느 회사에 자기의 아이디어 은총을 내려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이디어가 갖고 있는 힘 덕분이기도 했지만 실리콘 밸리의 기술자들 사이에서 클라크만큼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95년 말 실리콘 밸리의 최고 기술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직장을 고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클라크의 권위가 필요했다.

★ 회사주가 순식간에 폭등

클라크는 실리콘 그래픽스의 기술자인 페이반 니갬에게 연락을 했다. 니갬은 텔레컴퓨터를 위한 블랙박스를 개발했으나 시장성이 없어서 하나도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클라크가 니갬과 함께 세운 새 회사 헬시온은 99년 2월 중순에 주식을 공개했다. 이날 헬시온의 직원들은 모두 휴게실에 모였다. 액면가가 8달러인 헬시온의 주식이 얼마에 거래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오전 9시30분에 니갬이 월스트리트에 나가 있는 헬시온의 재정담당 사장 웨스턴맨의 전화를 받고 소리쳤다.“21달러50센트!” 방안에 있던 300명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24달러” 다시 환호가 울렸다. “방금 33달러25센트로 100만주가 거래됐어요!” 이번에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회사의 가치가 23억달러가 된 것이다. 니갬도 이제 4100만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부자가 되었다.

클라크의 주식은 모두 합해 3억7500만달러였다. 넷스케이프 주식지분과 합하면 클라크의 재산은 모두 15억달러였다.

★ 재산 15억달러 巨富

클라크는 분명히 기술을 이용해서 세계를 바꾸는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현재의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이 변한 다음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시 변화를 꾀한다. 클라크가 이런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끝없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지 않은 낙관론자다.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home/19991010mag-new-lewi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