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가 유례없는 호황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각종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불안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연달아 발표하는 경제안정대책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경제계 일각에선 강봉균(康奉均)경제팀이 시의적절한 안정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권오규(權五奎)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대우부채에 대한 실사가 끝나기 전까지 금융시장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대우문제 처리전까지는 파국을 막기 위한 종합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불안은 대우사태로 인한 것인 만큼 대우사태 해결전까지 어느 정도의 불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연구위원은 “대우문제 해결주체는 정부일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자꾸 채권단에 미루려해 문제”라면서 “정부가 신속히 대응하지 않을 경우 효과적 처방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은 대우사태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한국경제는 여전히 위기수습과정에 있으며 현재의 그럴듯한 경제성적표는 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게다가 정치권 정부 기업 소비자 근로자 등 경제주체들이 위기가 극복된 것으로 착각하면서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제의 현주소
거시경제지표는 외환위기 이전보다 훨씬 좋은 상황. 3대 경제지표인 성장 물가 경상수지가 이상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 성적표는 성장 8%대, 물가 1.5%, 경상수지 200억달러로 예상된다. 이같은 성적표는 우리나라 경제성장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산업활동지표들도 생산 소비 투자 등 전분야에 걸쳐 호황국면을 보여주고 있고 상반기중 부진했던 투자부문도 하반기들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경제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표상 문제가 되는 것은 금융시장. 상반기중 저금리―고주가로 순항하던 금융시장은 7월 대우사태 이후 불안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성장률은 반도체분야를 제외하면 올해 3%수준이라는 민간연구소의 연구결과도 있다. 게다가 한국은행은 1·4분기(1∼3월)중 잠재성장률을 2%대로 추산했다. 잠재성장률이란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최대치를 말한다. 외환위기 이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6∼7%대를 유지해왔다. 결국 성장률이 실제보다 과장됐으며 향후 성장능력도 약해졌다는 분석인 셈. 성장의 내용도 정부지출과 민간소비 중심이어서 건실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
실업률은 8월 들어 5%대, 실업자 120만명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을 포함하면 200만명이 육박해 여전히 높다는 지적. 직장을 원하지만 일자리가 없거나 찾을 수 없다고 믿는 실망실업자를 포함할 경우 실업률은 9%대라는 주장도 나온다. 8월중 취업자는 2052만7000명으로 전월보다 3만1000명이 줄었다. 재경부는 내년중반 이전에 실업자가 100만명미만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9월중 전년동월대비 0.8%에 머물렀지만 공공요금 등 인상압력이 누적돼 있는 상황이어서 낙관하기 어렵다.
실물분야의 이같은 취약성으로 인해 정부가 대우문제 해결에 실패할 경우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이 걱정이다
대우문제 외에도 내년도 경제에는 여러 악재가 가로막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올해 정책의 최대목표가 실업해소였다면 내년은 물가안정”이라며 “임금안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물가불안이 초래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임금인상을 생산성상승 범위내로 묶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하지만 내년에 공무원급여가 9%정도 인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임금상승 억제방안이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다.
이한구(李漢久)대우경제연구소 사장은 “정부가 농어민부채보증, 영세민 유치원자녀교육비지원, 공무원 급여인상 등 사회적 안정과 관계가 적은 지출을 마구 늘리고 있다”며 “빚내서 살림하는 정부가 이처럼 인심을 쓰다가는 인플레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잠재성장률이 크게 낮아진데다 올해의 높은 성장률에 따른 반등효과를 감안하면 내년도 성장률은 크게 낮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재경부관계자는 “내년도 성장률은 올해보다 2∼3%포인트 낮은 5∼6%가 적절한 수준”이라며 “이를 넘으면 오히려 인플레가 유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와 같은 고성장은 어렵다는 얘기다.
〈임규진·송평인기자〉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