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씨가 우리 정부에 보내온 탄원편지는 조국이 무엇인지를 새삼스레 생각하게 한다. 김씨는 미 해군정보국에 근무하던 96년9월 우리 주미무관에게 군사문건들을 건네주다가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김씨는 지난달 미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9년의 실형과 3년의 보호감찰이 확정됐다. 50대 후반의 나이인 그가 인생의 황금기를 영어(囹圄)의 몸으로 지내야 한다면 그것은 김씨 개인뿐만 아니라 재미동포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불행이며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씨는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부장관과 조성태(趙成台)국방부장관에게 각각 보낸 이 편지에서 “내가 한국의 스파이냐”고 물으면서 한국정부가 자신의 석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우리 외교부는 그가 미국 시민권자이고 사법판결이 났다는 이유로 공식대응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소극적 대처는 납득하기 어렵다. 김씨가 미국에 귀화한 시민권자라고 하지만 그는 분명히 우리와 같은 핏줄이다. 정부는 국내외 동포의 권익보호에 앞장서는 자세로 김씨의 석방을 위해 보다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구나 정부는 김씨의 행위가 개인적인 것이었으며 정부가 관련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그렇다면 손상된 국가 이미지를 씻기 위해서도 미국측 오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김씨와 유사한 사건으로 86년 유태계 조너선 폴라드가 체포됐을 때 이스라엘 정부는 그가 자국의 스파이임을 인정했다. 그런 후 외교채널을 통해 구명교섭에 나섰다. 총리가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직접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비록 석방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세계 여론은 이스라엘 정부의 자국민 보호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요즘 같은 국제적 교류와 협력의 시대에 스파이죄로 장기간 체형을 살게 하는 것은 인권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은 군사동맹 관계이기에 더욱 그렇다. 동맹국 당국자간에 문건을 건네준 것이 그렇게 중한 스파이죄로 처벌받아야 하는 행위인지도 따져 볼 일이다.
이 사건은 한미관계가 악화된 김영삼(金泳三)정부시절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 김대중(金大中)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충북 영동군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처럼 미국이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민간인들로 구성된 ‘로버트 김 구명위원회’의 활동에도 기대를 걸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정부가 앞장서 직간접의 구원방안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