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동거라는 말은 세상이 막다른 데로 치닫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찌 결혼이라는 신성한 만남 대신 그런 변태적인 남녀 결합이 늘어만 간다는 말인가.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에 익숙한 나이 든 층일수록 탄식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변화는 무상한 것인가. 프랑스에서 계약동거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민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동거 남녀도 결혼부부와 같은 법적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와 문필가 보부아르의 계약동거는 유명하다. 두 사람은 20대 초반에 만났다. 그저 2년만 살기로 했으나 사르트르가 종신(終身)할 때까지 50년 넘게 함께 살았다. 서로에게 다시없는 동반자 협력자가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둘 사이도 ‘계약’아닌 부부였다면 위태로웠을 것이라고 만년의 보부아르가 회고록에 썼다. 각각의 복잡한 이성관계가 그 이유였다.
▽피차 순결의 의무가 없다는 것이 계약동거의 ‘장점’이다. 또 헤어지고 싶을 때 이혼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도 필요없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전체 가구의 20%인 400만가구 정도가 계약동거라는 추산도 있다. 하지만 동거남녀에 대한 법적 보호가 문제였다. 결혼한 맞벌이 부부에게 적용되는 통합과세도 인정되지 않는다. 한 쪽이 불시에 죽어도 함께 산 사람에게 상속이 안된다.
▽프랑스의 새 법은 사회보장 납세 임대차계약 채권채무 등에서 결혼과 같은 권리 의무를 보장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동거의 장점은 고스란히 유지되고 단점도 거의 치유되는 셈이다. 이제 결혼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동거로 대체되는 날이 오기라도 하는 것일까. 한국에서도 몇년 전 사회조사에서부터 ‘결혼은 의무가 아니다’ ‘향후 계약동거가 크게 늘 것이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긴 오늘날의 결혼 인습이나 부부 의식도 수세기 전과는 천양지차이니 두려워만 할 일도 아닐 수 있겠지만.
김충식sear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