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영화의 세기였다. 그리고 영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전쟁 외계인 로보트 가족 괴물 우먼파워…. 영화에서 즐겨 다뤄진 소재와 캐릭터의 변화를 통해 금세기의 흐름을 짚어보는 ‘영화속의 20세기’를 연재한다》
퀴즈 하나.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작품상을 탄 소재는 뭘까?
답은 ‘전쟁’. 전쟁을 직접 다룬 ‘플래툰’(86년)이나 전쟁을 무대로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카사블랑카’(43년) 등 전쟁 소재의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모두 19회(27%)로 다른 어떤 소재 보다 많았다.
★2차대전이후 '봇물'
1차대전을 그린 ‘편대’(29년 시상) ‘서부전선 이상없다’(30년 시상)가 1,3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20세기는 전쟁의 비극으로 점철됐지만, 20세기 영화 팬들은 전쟁영화를 사랑했다.
거대한 스펙터클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고뇌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를 담아내기에 사실 전쟁만큼 적절한 소재도 없을 것이다. 전쟁은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가장 극적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전쟁 중에서도 가장 많이 영화화된 소재는 단연 2차대전. 전쟁 중인 42∼45년,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1700편의 영화 가운데 500편이 전쟁 영화였다.
★ 반전적 내용 많지 않아
이 영화들이 그린 전우애와 영웅담은 종전 후에도 ‘콰이강의 다리’(57년) ‘위대한 탈출’(63년) 등으로 이어졌다.
최근의 ‘라이언일병 구하기’(98년)도 미군의 영웅적인 헌신을 그린 영화.
반면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담긴 영화는 많지 않다. 2차대전 때의 핵폭탄 투하도 종전 후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64년)에서 풍자됐을 뿐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때 할리우드의 태도는 달라졌다. ‘람보’시리즈(82, 85년)처럼 맹목적인 애국주의 영화도 있었지만, 전쟁에 대한 성찰의 속도도 빨라졌다. 76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마자 전쟁이 남긴 상처를 다룬 ‘택시 드라이버’가 나왔다. 비슷한 주제의 ‘디어 헌터’(78년), ‘지옥의 묵시록’(79년)이 뒤를 이었다. 이 흐름은 ‘플래툰’(86년)‘풀 메탈 자켓’(87년)‘7월4일생’(89년) 등으로 이어졌다.
★불멸의 명작들 수두룩
할리우드가 베트남 전쟁을 묘사한 방식이 2차대전 때와 달라진 이유는 어찌보면 간단하다. 미국이 졌기 때문. 미국이 압승한 걸프전은 최근 제작된 액션 어드벤처 영화 ‘쓰리 킹스’에서 보듯, 여전히 ‘미국의 놀이’로 그려지고 있다.
냉전이 끝났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중에도 ‘검문소’(러시아) ‘종착역’(루마니아) 등 국지전과 인종 분쟁을 담은 영화들이 유난히 많다.
‘전쟁과 혁명의 세기’인 20세기에 불멸의 전쟁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