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들은 최근 일본 논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대학교수. 두 사람이 지난 1년에 걸쳐 일본철학계의 현안을 주제로 진행한 대담들을 정리한 책이다.
니시타니는 일본 메이지대에서 프랑스 사상을 번역 소개하며 주변인과 혼성언어 등에 관심을 갖고 비평활동을 해왔다. 사카이는 미국 코넬대에서 일본사상과 비교사상론 등을 강의하고 있고 세계 각국을 횡단하는 다(多)언어잡지 ‘흔적(TRACES)’의 발간을 기획하고 있다.
두 사람의 연구 관심은 다같이 일본이다. 그러나 각자가 몸 담고 있는 한 국가의 아카데미즘을 대변하고자 하기보다는, 일본의 철학적 고민을 프랑스와 일본, 미국과 일본의 경계선 위에 재설정하려고 한다.
이들은 일본이 국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서양 사상서적을 대량 번역 소개하면서 새로운 일본어를 만들어 정착시켰고 나아가 일본국가, 일본국민의 주체화를 추구해온 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국어 국가 국민이 삼위일체가 되어 주체적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근대화과정에서 정치와 철학, 교육체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으며 일본의 철학 또한 이 과정 속에서 형성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의 철학을 보편적인 서양철학과 대조되는 특수하고 고유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양철학과 공시적, 계보적 관련성을 지니면서 전개된 지역적 변용(變容)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담은 1940년대 교토학파 철학자들의 연속 좌담회 내용을 실은 ‘세계사적 입장과 일본’. 교토학파는 2차대전 중 ‘철학적으로 전쟁에 부역했다’는 ‘과거’로 인해 지금껏 일본학계에서 논의조차 금기시돼온 존재. 그러나 두 사람은 이같은 터부를 넘어 교토학파가 일본의 주체적 도덕적 에너지를 통해 세우고자 한 ‘세계사’적 입장을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해체,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즉 내셔널리즘도 아니고 유럽중심주의에 뿌리를 둔 보편주의도 아닌, 세계화(Globalization) 혹은 세계성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보편과 특수, 유럽중심주의와 동양, 국제화와 민족주의 등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철학계에도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양일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