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여성이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래된 게 아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친 그 유명한 독립선언서에도 인간은 남자(men)였을 뿐이다. 휴먼이라고 쓰지 않은 게 실수가 아니었다. 아예 여자는 안중에 없었다. 초기 미국인이 가축(家畜)처럼 부리던 흑인 노예가 해방되어 선거권을 얻은 게 1870년. 그런데 여성은 흑인보다도 50년이나 늦게 투표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미국에서 올 봄 현지의 한국 반도체공장이 여성에게 고용 차별을했다는 이유로 무려 950만달러(당시 약 114억원)를 물라는 평결이 났다. 여성들과 흑인의 이력서조차 받지도 않도록 했다는 것이 평결 취지다. 또 연초 코네티컷주 한 대학의 재임용에서 탈락한 한 여교수는 성차별이라고 제소, 무려 1260만달러의 보상을 받아 화제가 되었다. 성 차별에 대한 응징이 무겁고도 무섭다.
▽일본에서도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2차세계대전 패전 이후다. 지금도 여성은 명문대 출신이라 해도 대기업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런 보이지 않는 ‘장벽’을 겨냥해 올해 부터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 법에 따라 남녀 차별 의식이 밴 어휘도 바꾸어 써야 한다. 웨이트리스는 플로어 스태프, 영업맨은 영업직, 스튜어디스는 객실승무원으로. 그러나 신부(新婦) 무녀(巫女) 호스티스처럼 달리 부를 수 없으면 그대로라고 한다.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위원장 강기원)는 강원도의 한 의료보험조합이 여직원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16년 동안 승진을 시키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 시정 권고를 했다. 7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법이 시행된 이후 첫 케이스다. 참으로 인류가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세상의 절반’ 여성이라는 존재. 여성을 부당하게 차별 대우하지 않는 것은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다. 나아가 그들의 잠재 능력을 국가경쟁력으로 피워가지 않으면 21세기형 선진국도 불가능한 게 아닐까.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