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송희씨(36·서울 은평구 신사동)는 백화점에 갈 때마다 와인코너에 꼭 들른다. 값비싼 와인을 찾는 것은 아니다. 1만원대인 칠레산이나 포루투갈산이 보통이고 큰맘먹고 골라야 2∼3만원대인 프랑스산 까베르네 소비뇽이거나 독일산 그린골드다.
그는 미국지사로 발령받은 남편과 함께 2년간 워싱턴에서 살면서 “와인이 생활을 풍부하게 해주는 문화의 한부분임을 알았다”고 했다.
“남편과 와인을 마시며 얘기합니다. 식탁에 올려놓으면 기분이 달라져요. 와인을 잔에 따라 향기를 맡고 한모금 머금어 맛을 본 뒤 목구멍에 남겨진 잔향을 천천히 즐기죠. 많이 마실 필요도 없이 분위기가 좋아지고….”
97년 심장병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시중에 레드와인이 동이 날 만큼 소비가 급증한 와인. 웬만한 레스토랑이면 와인리스트를 갖췄을 정도로 와인이 생활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와인 전문수입업체인 나라식품에 따르면 최근 경기가 풀리면서 와인수입량은 역대 최고치인 97년의 600억원어치에 근접하고 있다. 백화점 뿐 아니라 전문점을 통해 와인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도 늘어났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와인전문점 와인타임의 허동조사장은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이 포도의 품종, 맛과 향기, 병의 모습과 라벨에 얽힌 얘기, 음식과의 관계 등에 대한 소믈리에(와인캡틴)의 조언을 듣고 취향에 꼭 맞는 와인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와인동호회가 속속 생겨나고 수입와인을 무료로 맛보거나 맛을 만들어 보는 행사도 많이 열린다. 수출물량이 많은 프랑스와 독일의 상공회의소가 주로 개최. 최근에는 호주가 가세해 올랜드 윈담사가 18일 오전11시 서울 리츠칼튼호텔 볼룸에서 와인동호회들을 초청, 쉬라즈와 카버네 와인을 가장 '맛있게' 섞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행사를 연다.
지난주 서울 인터컨티넨탈 호텔 1층에 문을 연 그랑카페의 비노테크(와인광장)에서도 3가지 종류의 와인을 한잔값(9000∼1만5000원)에 맛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고객이 주문한 와인의 이름과 생산지역을 적은 기록지를 주고 고객이 색깔 향 맛을 써넣도록 하고 있다. 고객에 맞는 와인을 찾아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
동호인들에게 와인강의를 하고 있는 한국소믈리에협회 회장 서한정씨는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취향에 맞춰 즐기려는 방향으로 음주패턴이 바뀜에 따라 와인문화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