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봐요, 이것 좀. 그 도톰하던 내 아랫입술이….”
최근 경기 양주군 주내면에 있는 MBC 월화드라마 ‘국희’(밤9·55)야외 세트장.
10여개월 만에 만난 탤런트 김혜수(29)는 이전의 “안녕하세욧!”하며 외치던 경쾌한 인사 대신 마른 땅처럼 갈라진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브랜드 이미지’인 건강미인은 고사하고, 연초 한 여론조사에서 꼽은 최고의 ‘입술 미인’도 간 데 없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그가 요즘 휴일도 없이 어떤 날은 하루에 20시간을 쏟아 붓으며 창출하고 있는 극중 인물 민국희는 60∼70년대를 배경으로 고난을 딛고 가업(제과업)을 잇는 C제과 여사장이 모델이다. 정치가 최민권(손창민 분)을 놓고 어릴 적 친구이자 연적(戀敵)인 송신영(정선경)과 갈등하기도 하지만 결국 일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여성이기도 하다. 김혜수는 민국희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박지미(초등학교 5년)의 바통을 잇고 있다.
요즘 김혜수의 수면 시간은 하루 두 시간 미만이다. 시대극이라 거의 매주 세트를 개조해야 하는 데다 한 장면을 위해 두 시간 이상을 리허설에 할애하는 연출자 이승렬PD의 꼼꼼함 때문이다.
게다가 시대극에는 몇년 만의 출연이라 별도의 적응 시간이 더해져 얼마전부터 ‘퇴근’을 포기하고 아예 야외 세트 인근 P모텔에 장기투숙 중이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국희’에 빠져들게 했을까?
“시대극의 매력은 캐릭터를 통시적으로 보여준다는 거죠. 한 인물의 성장사랄까….”
하긴 그는 액션활극인 ‘복수혈전’(97년 MBC)부터 연초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MBC)에 이르기까지 몇 년간 줄곧 현대물에서 역할을 맡아 온 데다 시청률 면에서는 ‘대박’을 터뜨리지 못해 시대극에서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 최근 김혜수의 매력은 시대극에서 오히려 극대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
고전적 외모는 물론이고 연기생활 15년 간 시대극 ‘세노야’(KBS) ‘곰탕’(SBS) 등에서 그가 보여준 여인상은 ‘좌절과 극복’이라는 드라마적 도식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얘기다.
‘국희’는 김혜수의 건강하고 당당한 이미지를 이러한 공식에 적절하게 대입한 결과물이란 얘기다. 최근 출연작 중 시청률 면에서도 최고의 성공(30%대 이상)을 거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희’의 기획자이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연출자 박종 부장PD는 “김혜수가 최근 몇 년간 TV에서 대히트하지 못한 데 따른 스트레스를 이번 기회에 날려 버리려는 듯 몰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수는 SBS 토크쇼 ‘김혜수의 플러스 유’(수 밤11·00)를 1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보기와는 달리 의외로 낯을 가리는 그는 ‘…플러스 유’를 통해 귀를 여는 방법을 배웠다.
“서른살 이전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일을 통해 배우게 된 것은 큰 행운입니다.”
〈양주〓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