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사회양극화 현상을 반영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의 고질인 과소비 풍조가 되살아난 것인가. 한쪽에서는 IMF체제의 어두운 그림자였던 노숙자가 작년의 2배로 늘어났다는 보도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 씀씀이가 소득수준 대비 일본인의 2배라는 통계수치가 나왔다. 아직도 외환위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국내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지극히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물론 외환위기 이후 해외여행 씀씀이가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 1인당 해외여행경비는 945달러로 일본인의 1821달러나 대만인의 1240달러보다는 낮다. 그러나 소득수준을 감안한 여행경비는 일본이 국민소득 대비 5.6%, 대만이 9.1%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3.9%로 일본의 2배, 대만의 1.5배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올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한마디로 외환위기 이전의 해외여행 과소비 풍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경제는 아직 낙관을 불허한다.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을 복병들도 수없이 많다. 대우사태와 투신사 부실에 따른 금융 채권시장의 불안정은 말할 것도 없고 외환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던 경상수지 흑자도 줄곧 감소추세에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든지 외환위기를 다시 맞을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도 150만명이 넘는 실직자가 고통을 받고 있다.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도 작년의 2배인 6000명으로 늘어났다. 새로운 노숙자들은 그동안 몇푼 안되는 퇴직금으로 연명해 오거나 창업이나 재취업을 했다 실패한 사람들, 겨울철을 앞두고 일거리를 잃은 일용직 노무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부 계층의 흥청망청 과소비 해외여행이 되살아나고 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금모으기에 나선 때가 언제인데 그때의 참담했던 상황을 어느새 잊었단 말인가. 비단 해외여행만이 아니다. 사회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과소비 추세가 걱정이다. 과소비의 만연은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물가를 자극하고 국제수지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계층간의 위화감을 증폭시켜 우리사회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재작년 외환위기를 부른 것이 우리경제의 구조적 모순 때문만은 아니다. 꼭 정부나 재벌탓만도 아니다.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전후한 해외여행 자유화 붐을 타고 흥청댔던 국민의 해외과소비도 한몫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