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23). 그는 책을 낸 30명의 판타지 작가 중 신인에 속한다. 96년부터 PC통신 나우누리 게시판에 연재했던 장편 ‘마법의 검’을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9월에 책으로 냈다.
단 한권의 책을 냈지만 판타지계에서 그가 갖는 의미는 크다. 영웅담으로 일관하던 기존 판타지와 달리 ‘마법의 검’은 통신 연재 당시부터 비극적 분위기와 모호한 선악구분에 마법사 등 전통적 판타지의 주변인물을 주역으로 등장시키는 등의 시도로 마니아들의 ‘숭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영웅이 진짜 영웅다웠을까에 의문을 품어 보았어요. 단순구조인 기존 판타지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지요.”
10여명의 판타지 작가가 소속돼 있는 자음과모음 관계자는 “‘마법의 검’은 작가들 사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최초로 판타지를 접한 것은 중학시절 컴퓨터를 사 통신의 세계에 뛰어들면서부터. 처음에는 게임의 세계에서 판타지 주인공들을 만났으나 96년 나우누리 게시판에 ‘마법의 검’ 연재를 시작하면서 판타지는 그의 일상이 됐다.
“처음엔 반쯤 장난이었어요. 그런데 조회수가 1000건 넘게 유지되니까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하루만 연재를 쉬면 문의 메일이 정신차릴 수 없게 날아들고….”
지난해 말 작품이 완성되고 출판의 길도 열리자 그는 ‘마법의 검’에서 찾은 판타지의 실마리를 ‘마법기사의 전설’ 연작으로 확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출판사와는 5권의 장편을 쓰기로 약속했고 재충전의 기회를 갖기 위해 다니던 학교(대전대 토목공학과)에 휴학계를 던졌다.
그는 판타지가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많은 독자를 갖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일본만 해도 애니메이션의 3분의 1은 판타지에서 소재를 찾으며, 성공한 판타지 대부분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는 것. 이런 ‘2차 가공’ 판타지는 전세계로 수출된다.
“판타지에 대해 1회용 심심풀이 문학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있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최근 이영도 이수영 홍정훈 김예리 등의 작품은 문학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고 봅니다. 판타지는 현실의 배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공간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에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76년 대전생. 어릴 때부터 책에 파묻혀 지내기를 좋아했다.
컴퓨터와 함께 살기 때문에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고,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여자친구도 아직 없다고 ‘주장’한다.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통신 채팅룸에서 만나자고 제의해와 ‘온라인 인터뷰’가 이뤄졌다. 그는 단군신화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천부인’도 구상하고 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