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126호)은 8세기초 통일신라가 제작한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이다.”(한국)
“다라니경은 702년 중국이 만들었고 이를 신라가 수입했던 것이다.”(중국)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제작 연대가 불분명하다. 가장 오래된 것은 770년에 만든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다.”(일본)
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또 한 중 일 세나라 중 목판인쇄의 원조는 어느 나라인가.
인쇄문화의 기원을 놓고 한 중 일의 자존심 대결이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통일 신라라고 생각하지만 국제학계의 ‘공인’은 받지 못한 상태.
인쇄 종주국의 자존심을 놓고 또 한차례의 격론이 벌어진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마련한 ‘세계 인쇄문화의 기원’에 관한 국제학술심포지엄(19∼20일 연세대 상남경영관).
논쟁의 시작은 96년말 중국이 “다라니경은 중국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부터. 중국자연과학사연구소 판지싱(潘吉星)교수는 “다라니경의 글자 중 8자가 당나라에서 사용됐던 ‘무주제자(武周制字)’이고 중국산 닥종이로 만들어졌다”며 논의에 불을 당겼다.
우리 학계는 그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첫째, 무주제자. 이 글자는 중국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때에도 나타난다.
둘째, 닥종이. 박지선 용인대교수의 설명.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다라니경의 닥종이는 화엄사 서탑에서 발견된 백지묵서경(8세기 중엽)과 같은 신라 닥종이다.”
셋째, 글씨체. 김성수 청주대교수. “다라니경에 나오는 ‘정광(淨光)’자가 경주 구황동 삼층석탑사리함(706년)의 글씨와 똑같은 체의 신라 글씨다.
또 다라니경의 파자(破字·온전하지 않은 글자)하나가 ‘조(照)’자임을 확인했다. 이 글자는 당시 여황제였던 측천무후(무조·武照)의 이름자여서 중국에선 쓸 수 없었던 글자다.”
그러나 중국은 한 술 더 떠 신장에서 발견된 ‘묘법연화경’이 690년대 제작된 세계 최고의 인쇄물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번 심포지엄에서도 합의된 결론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중국이 인쇄 종주국임을 입증하기 위해 범국가적으로 나서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개별적 차원의 연구에 그치고 있다는 점만은 이번 기회에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