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종금사 임원이었던 A씨는 IMF사태로 직장은 날라갔지만 그동안 푼푼이 굴린 재산으로 노후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날벼락을 맞았다. 예금보험공사측이 부실책임에 대한 구상권행사에 나섰기 때문. A씨는 집과 땅, 자동차 등 재산 일체를 전격적으로 가압류당하면서 사실상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은행예금을 제외하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 없어졌다. 이사도 못가고 자동차도 팔 수 없게 됐다. 급한 목돈을 마련하려면 부동산을 담보로 내놔야 하는데 이 조차 불가능해졌다. 한마디로 법원판결을 앞둔 빚쟁이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
▼골프회원권도 대상▼
앞으로 예보공사가 골프장회원권까지 가압류조치를 취할 계획이어서 A씨의 처지는 더욱 비참해진다. 해당 골프장에 이같은 사실이 통보되기 때문에 A씨는 골프도 포기해야 할 형편이다.
예보공사는 A씨가 부인을 포함한 친인척 명의로 재산을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이에 대한 사해(詐害)행위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황이다. 어떤 형태로든 은닉재산이 나오면 즉시 가압류하겠다는 게 예보공사의 계획.
결국 A씨의 선택은 모든 재산을 내놓는 것외에 방법이 없다. A씨는 미리 재산을 처분하여 외국으로 이민가버린 퇴출금융기관의 모 임원이 부러울 따름이다.
A씨는 예보공사측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법원의 판결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며 자포자기한 심정을 밝혔다.
그런가하면 비슷한 처지를 당한 퇴출종금사 여신담당 임원 B씨는 당당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여신담당임원이었던 B씨는 예보공사측에 “본인의 경우 그런 책임을 질만한 지위에 있지 않았으며 우리나라 이사들이 외국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결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며 “오너가 사장을 통해 절대권한을 행사하는데 우리같은 임원들이 무슨 책임이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B씨는 특히 부실대출건과 관련하여 “나는 수신만 유치했으며 여신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그같은 부당대출건에 대해선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변명했다.
B씨의 주장은 한마디로 대표이사와 오너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논리다.
예보공사측은 “여신담당자가 대출건에 대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면 담당자는 감독소홀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응수한다.
B씨가 오너의 부당한 대출지시 등을 제시한다면 오너에 대한 ‘손해배상의 근거자료로 삼겠다’는 게 예보공사의 판단이다.
대주주의 경우 별다른 증거자료가 없어 손해배상소송을 하지 못하기 있기 때문이다.
▼“재산은닉 어림없다”▼
예보공사 관계자는 “퇴출종금사 임원중 일부는 97년 12월부터 재산을 부인이름으로 돌리는 등 재산을 빼돌린 흔적이 포착되고 있다”며 “끝까지 추적해 책임부분만큼 환수하겠다”고 말한다.
예보공사는 1차로 최근까지 7개퇴출종금의 임원 36명에 대해 2000만원에서 20억원까지 모두 334억원의 재산가압류조치를 취했다.
예보공사에 따르면 본인소유 부동산은 거의 대부분 가압류조치를 취했으며 가압류대상은 주택 오피스텔 자동차 토지 등이 주종.
가압류조치를 위해 현장에 나갔던 예보공사의 실무담당자는 “책임을 져야할 임원들중 상당수는 최고급빌라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회사가 망하고 수조원의 손실을 국민경제에 끼쳤지만 당사자들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더 높은 자리로 영전한 경우도 있었다는 것.
아직 가압류조치를 당하지 않은 퇴출금융기관 임원들은 이미 명의신탁을 통해 재산을 빼돌린 사례가 많은 것으로 예보공사는 파악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까운 친척이나 믿을만한 친구에게 명의를 이전하고 부인명의로 재산을 돌려놓고 서류상으로 이혼을 하는 파렴치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모 종금사 임원은 재산을 몽땅 정리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버렸다.
현직 금융인들도 비상이 걸리긴 마찬가지다.
▼여신업무 기피 풍조▼
A은행 관계자는 “요즘 시중은행 임원중에서 여신 담당 이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과거처럼 대출받으려고 줄서는 상황에서야 일하는 맛이 있었지만 요즘은 언제 부실여신이 될 지 노심초사해야 하고 업무는 폭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택은행은 올 3월 김정태행장 등 5명의 상임이사, 집행임원인 5명의 집행부행장, 9명의 비상임이사 등 모두 19명의 임원에 대해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 보상한도는 200억원이며 이에 따른 보험료는 5억9600만원. 한빛은행도 지난해 9월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면서 9억원의 보험료를 냈다.
〈임규진·신치영기자〉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