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백남준의 예술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백남준 예술의 중심을 이루어온 플럭서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1960년대의 백남준을 과격한 전위예술가로 묘사할 때마다 플럭서스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하였다. 플럭서스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백남준의 예술을 가꾸어준 정신적 지주이면서 그의 저항적 예술행위를 체질화시켰던 저력의 근원이었다. 백남준 예술철학의 중심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플럭서스를 이해하지 않고는 결국 백남준의 비디오예술이나 행위예술 퍼포먼스 행위음악 등은 한낱 관객에게 유희나 충격, 또는 쇼맨십 정도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플럭서스는 그만큼 백남준 예술의 핵심이며 또 비디오예술의 탄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다이즘 철학 계승▼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이름만 들어도 그 집단의 개성을 금방 이해할 만큼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만능 예술가로 불려온 조셉 보이즈가 그러하고 플럭서스의 창시자인 조지 마치우나스, 그리고 앨런 카프로우 앨런 긴즈버그, 라몬트 영, 조지 브레히트, 벤저민 패터슨, 트리샤 브라운, 오노 요코, 벤 보티에, 앨리슨 놀즈, 토마스 슈미트, 볼프 포스텔, 조나스 메카스가 그러하다. 그리고 역사상 최초의 극작가 대통령으로 불리는 체코의 바츨라브 하벨과 구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리투아니아의 초대 대통령이 된 비타우타스 란즈베르기스가 플럭서스 멤버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플럭서스는 20세기초 다다운동처럼 기이하고 우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매우 난해하다. 다다운동과 1960년대 플럭서스 사이의 유사한 관계는 미국의 조지 마치우나스가 플럭서스를 ‘네오 다다’라고 언급한데서 잘 나타난다. 플럭서스가 다다이즘의 철학을 받아들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럭서스의 철학은 무엇일까. 마치우나스는 플럭서스의 존재이유에 대해 “고급예술이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우리는 플럭서스를 한다”로 설명하였다. 이 말 속에는 플럭서스가 반 고급예술을 위한 실천집단처럼 묘사되고 있다. 적어도 플럭서스는 고급예술을 지양하고 대중적 예술행동과 강령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전달된다. 그런가 하면 플럭서스의 대표적 이론가인 토마스 켈라인은 “플럭서스는 도대체 예술인가, 아니면 수수께끼인가? 플럭서스는 포스트모더니즘인가”라고 반문하면서 플럭서스의 정체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사인 거부 상품성 배격▼
20세기초 다다 예술가들이 마치 미치광이 집단으로 인식되었던 것처럼 플럭서스도 그 정체에 관한 논란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다이즘이 예술이 된 것처럼 플럭서스도 오늘날 중요한 예술경향임은 물론이다. 백남준은 플럭서스 운동의 창립멤버이며 오늘날에도 플럭서스 이야기만 나오면 떠나간 연인이 되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제 정신이 아닐 만큼 애정이 가득하다. 플럭서스 없는 백남준은 가히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플럭서스란 라틴어로 ‘흐름’이란 뜻을 갖고 있다. 미국의 건축가였던 조지 마치우나스가 발행한 잡지 ‘플럭서스’로부터 이름이 그대로 차용되었으며 1962년 창설이후 ‘플럭서스그룹’ 또는 ‘플럭서스 예술가’ ‘플럭서스 운동’ 등으로 묘사되었다.
플럭서스 예술은 의외성을 수반하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함께 플럭서스식의 글쓰기, 그리고 예술의 상품성을 거부하기 위하여 작품에 사인을 거부하는 행동 등으로 유명하다. 가령 이 연재의 초반에 소개하였던 백남준의 격렬하고도 전위적인 행위예술은 거의가 플럭서스 퍼포먼스였다. 또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사인 없는 장난감 같은 오브제들은 예술의 상품화를 철저히 배격하기 위하여 재미로 손쉽게 만들어 전시하였는데 이는 엄청난 가격을 지닌채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는듯이 보이는 미술품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백남준의 플럭서스식 글쓰기 내용을 한 토막 읽어보기로 하자.
“내가 만든 텔레비전은 항상 재미있는 것도 아니지만 항상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 항상 아름답게 변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변하기 때문인 것처럼. 내 텔레비전에서 질(quality)이란 말은 가치(value)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개성(character)을 의미한다. A가 B와 다르다는 것이 A가 B보다 낫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빨간 사과가 필요하지만 가끔 빨간 입술도 필요하다.”
▼행동주의 정신 실천▼
그렇다면 플럭서스가 추구하던 본질적인 미학은 무엇이었을까. 플럭서스 창시자인 조지 마치우나스는 독일의 시인이며 플럭서스 예술가인 토마스 슈미트에게 쓴 편지에서 “우리가 예술을 한답시고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로부터 이탈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모든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이 사회와 행동을 같이 하여 새로운 물결이 될 것이다. 또 다른 다다클럽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플럭서스는 인간정신을 현혹시키고 소비하는 것에 중지신호를 보내는, 이를테면 반미학적인 것이다. 따라서 플럭서스는 이 사회에 기능하지 않는 상품으로서의 예술품을 명백히 반대한다. 플럭서스는 예술가의 에고를 촉진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예술에 반대하는, 그리고 에고를 촉진시키는 전문집단이 아닌 반 전문집단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플럭서스 철학이 더욱 명백하게 나타나는 것은 프랑스의 플럭서스 작가 벤 보티에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조에 달한다. “그대의 에고를 가능한 한 억제하고 제거하라. 작품에 사인을 하지 말라. 아무 것도 그대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탈 개성화하라. 그대를 탈 유럽화하라.”
이러한 강령들 때문에 플럭서스 자체 내에서도 반발이 뒤따랐지만 궁극적으로 이들은 무정부적이고 탈 자본주의적 속성을 유지한 플럭서스의 철학에 따라 마치우나스의 의견을 수용하였다.
플럭서스 에술가들은 화가 음악가 무용가 시인 건축가 영화제작자 행위예술가 등 다양한 예술영역에서 참여하였기 때문에 플럭서스를 특정 예술경향으로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럭서스는 특유의 자유로운 표현과 행동주의로 예술의 속성을 한층 다양하고 재미있게 유도한 예술형식이다. 특히 비디오예술의 초기 선구자인 백남준을 비롯하여 볼프 포스텔, 조지 브레히트가 모두 플럭서스 초기 멤버였다는 사실은 비디오가 가지고 있는 반 제도권적이고 반모더니즘적인 속성을 플럭서스에서 이식해온 증거이다.
이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