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가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심혈관계 질환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서 원본을 동네 약국에 맡기고 한달에 여덟 알까지 구매할 수 있다. 올 초반기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단어는 아무래도 ‘발기’일 것 같다. 여름에 여권 신당이 발기되어 21세기 첫 총선정국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고 발기부전(임포텐츠)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고개 숙인 남성들을 단단하게 달구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발기부전은 과거 6개월간 성행위 시도에서 음경이 발기를 유지하지 못한 횟수가 50%를 웃도는 경우이다. 작년 2월 대한남성과학회 학술대회에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28.6%가 발기부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
연령별로는 40대 27.1%, 50대 46.1%, 60대 53.2%이다. 50대 이상의 절반 가량이 풀이 죽어 있는 셈이다.
국내 발기부전 환자는 약 200만명으로 추산된다. 배우자까지 합치면 400만명 정도가 성생활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임포텐츠가 빌미가 되어 갈라선 부부가 적지 않을 터이다.
요즈음 남편들은 이혼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되지만 한때 중세 유럽에서는 성불능 혐의를 받으면 재판장에서 발기 능력을 시험 받는 수모를 겪었다. 가령 15세기 베네치아에서는 아내로부터 임포텐츠로 고발 당한 남자가 증인석 앞에서 한 창녀와 성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남자의 발기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이혼소송의 사유가 되었던 것이다.
비아그라로 고개 든 남성들이 반드시 감사해야 할 사람이 있다. 길스 브린들리라는 영국 의사이다.
임포텐츠 치료 역사에서 새 장을 연 장본인이다. 1983년 57세의 브린들리는 국제회의 연단에 나타나 느닷없이 팬티를 내리고 꼿꼿이 선 페니스를 동료들 앞에 내밀었다. 그는 자신의 음경에 약물을 투입해 발기가 유발되었음을 보여주려고 해프닝을 연출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발기부전 치료제의 개발이 본격화된다.
비아그라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도 뜨겁다. 오르가슴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불감증 치료에 효과가 없다는 쪽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비아그라가 몰고 올 사회적 파장은 심상치 않을 것 같다. 먼저 오남용이 우려된다. 장시간 성욕과 무관하게 발기가 계속되는 지속발기증이 나타날 수 있다. 바지 속의 음경을 잠재우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내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비아그라를 물개 성기나 곰 발바닥 따위의 정력제로 착각한 사내들로 혼외정사나 원조교제가 늘어나고 러브호텔이 떼돈을 벌지 말란 법이 없다.
한편 비아그라가 삶의 활력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인류 역사에서 남근을 숭배한 흔적은 많다. 고대벽화에는 발기한 페니스가 묘사되어 있다. 어디 옛날뿐이랴.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 우주로 비상하는 로켓 역시 영락없이 발기한 남근을 닮아 있지 않은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비아그라의 등장으로 전지전능한 남성상의 신화가 부활하게 될지 모른다고 호들갑을 떨 만도 하다. 어쨌거나 비아그라가 몰고올 성혁명으로부터 자유로울 남자는 흔치 않을 것 같다.
멀쩡한 사내들도 호기심으로 복용하고 싶어 할 테니까. 솔직히 말해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물론 아내의 동의를 받아야겠지만.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