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탈색된 머리칼과 쫙 달라붙는 바지, 1m86의 겅중한 키에 그늘이 배어 있는 옅은 웃음.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뻬인트’ 역으로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유지태(23)의 영화 속의 모습이다.
▼테크노 세대 상징
9월18일 개봉한 이 영화는 지난주말 관객 집계에서 처음으로 ‘식스 센스’를 누르고 1위에 오르면서 서울기준 관객 30만명을 넘어섰다.
‘주유소∼’가 예상 밖으로 선전하고 있는 데에는 그의 인기도 한 몫 하고 있다는 게 영화가의 분석이다.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두 편의 CF 출연 계약을 했는가 하면 TV 오락프로의 거듭되는 출연 요청을 사양하느라 바쁘다. ‘뻬인트’에 눌려 ‘노마크’(이성재) ‘무대포’(유오성) 등 더 ‘센’ 별명의 연기 선배들도 뒷전으로 밀려난 처지.
극 중 대사도 적은 그가 집중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뭘까?
영화평론가 심영섭(임상심리학자)은 “영화 속에서 그는 튀는 것이 두렵지 않은 테크노 세대의 상징적 존재로 그려진다”면서 “그러면서도 얼굴에 묘한 슬픔이 배어 있어 보호본능을 일으키며 젊은 팬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주변의 소란에 딴청이다.
▼성격파 배우가 꿈
“이제 영화라는 동네에 갓 태어난 아기같은 존재입니다. 알몸이었다가 이 영화의 성공으로 ‘팬티’ 하나 걸친 느낌이랄까요. 착실한 연기수업으로 잭 니컬슨 같은 성격파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98년 ‘바이준’에 이번이 두번째 작품. 신인 티를 벗지 못했지만 영화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지난해 12월 캐스팅 단계에서 그가 처음 맡은 역은 ‘무대포’. 단순무식한 캐릭터에 어울리게 평소 74㎏의 체중을 2주만에 12㎏나 늘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사가 많은 ‘무대포’ 역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고집해 ‘뻬인트’로 역할을 바꾸고 다시 체중을 줄여야 했다. ‘뻬인트’의 헤어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촬영기간 중 5일에 한 번씩 미장원에서 화학약품으로 멀쩡한 머리를 탈색시키기도 했다.
이 영화의 김상진감독은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도화지 같이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얼굴”이라고 말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