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전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한 곳이며 우주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평범한 사람들은 ‘개성’이라는 개념은 고사하고 성(姓)도 없었다. 사람들의 자아는 교회와 왕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과학적 발견과 인본주의적 사상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면서 개인의 자의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지상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하나님을 밀어내고 인간이 하루아침에 그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근대의 막을 연 것은 어쩌면 커다란 전쟁이나 훌륭한 발명품, 또는 항해술의 놀라운 발전보다도 바로 개인의 자의식의 등장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지구에는 서기 1000년의 인구와 비교해서 무려 20배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씨를 갖고 있으며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다.
이번 밀레니엄 특집⑤(The Me Millennium)에서는 정체성의 변화를 물리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 공적인 측면과 사적인 측면, 이타적인 측면과 이기적인 측면에서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획일화가 점점 진행되고 있는 요즘 개인이 자신만의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개미’에서 우디 앨런이 목소리 연기를 맡은 개미 Z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한다. Z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데도 “그럼, 나는 뭔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면서 “사회의 시스템이 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기분이 들게 한다”고 호소한다. 정신과 의사는 Z의 이 말이 치료의 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보고 “당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Z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이 새로 찾은 진리를 통해 Z가 자신의 운명에 더욱 만족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Z가 원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Z처럼 우리 인간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보여준다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뭔가' 끝없는 질문
“나는 뭔가?”라는 이 질문은 지난 1000년 간 일어난 사고의 변화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화의 상징이라고 할만하다. 세상이 아직 ‘신앙의 바다’에 잠겨 있고 하나님이 그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던 시절에 “나는 뭔가?”라는 질문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하나님에 비한다면 도대체 개인이라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의 학문적 성과는 하나님을 하늘나라에서 쫓아내 버렸다. 현대 과학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덕적 명령에 대해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합리적인 추론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으로부터 비롯된 이 새로운 사상은 마젤란이나 콜럼버스 같은 탐험가, 데카르트나 로크 같은 인본주의 철학자 셜록 홈스 같은 탐정들을 낳았다.
▼'신앙의 바다' 벗어나
그러나 하나님을 우주의 중심에서 쫓아낸 뒤, 그 빈자리에 새로 들어설 존재를 찾아내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웠다. 사실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목적의식 없이 자유를 허락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라진 마당에 누구에게서 지혜를 얻고 목적을 부여받을 것인가?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개성에 대한 찬양을 거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개인과 사회의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가는 소위 ‘대의’를 위해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집하고, 사람들은 인종별 성별로 집단을 만들어 연대감을 느끼려 한다. 모든 직업에는 다 연합이 있으며, 미식축구 경기에서 돈 많은 코치들은 자기보다 더 부자인 선수들에게 개인이 아니라 팀을 위해 경기에 임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코치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개인주의 사고 넘쳐
우리가 지나친 개인주의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태양이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지구의 주위를 도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는 뭔가?”라는 질문을 생각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무엇인가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개인의 차원을 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필자〓리처드 러소(소설가)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5/me―russ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