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열흘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이 정부가 그동안 경제위기 극복과 남북관계 등에서는 큰 성과를 보였음에도 국민이 문제를 느끼는 것은 정책의 투명성, 정직성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19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가 대신 읽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생산적이고 책임있는 정치’를 이루기 위한 정치개혁의 시급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우리는 김대통령의 이와 같은 진단과 처방에 대해 일면 공감하면서도 두 가지 점에서 이의(異議)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첫째, 현재 국민이 문제시하는 것이 주로 정책의 투명성과 정직성 결여에만 있느냐는 점이다. 우리는 정책보다는 정치가 투명성과 정직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데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둘째, 정치개혁의 당위성과 시급성은 누구도 부정못할 국민적 합의라고 하나 정치개혁의 근본인 정당 민주화 없는 정치개혁이 과연 새로운 세기에 걸맞은 선진정치의 틀을 이뤄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은 현재 집권 여당인 국민회의에서 보여지는 몇몇 모습들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선거연령을 19세로 하느냐 20세로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여당의 정치개혁 특위는 14일 19세로 최종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결정은 같은 날 오후 김대통령과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의 회동에서 20세로 뒤집혔고 그대로 발표됐다. 물론 총재도 당원인 이상 다른 의견을 낼 수 있고 그에 따라 결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적 정당이라면 이럴 경우 최소한 다시 한번 논의를 거치는 과정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당 창당 문제도 그렇다. 대다수 국민회의 의원들은 수뇌부 몇 사람에 의해 당내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신당 창당에 소외감과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신당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민련과의 합당설이 얽히면서 합당이 먼저인지, 신당이 먼저인지 갈피조차 못잡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혼란을 느끼기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여권의 불투명한 정치일정이 국정의 주요 불안요인이다.
거듭 말하지만 정치개혁은 단순히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선거구제나 고치는 것이 아니다. 국민과 당원의 의견이 수렴되어 정책에 반영되는 민주적 정당을 만드는 것이 그 근본 과제다. 한 설문조사에서 정치학자들의 66.5%가 신당 창당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권 수뇌부는 무엇보다 신당 창당 절차의 비민주성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