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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미스터]직장인 ‘땡보직’ 각광…기획등 현장직 뜬다

입력 | 1999-10-24 19:26:00


1년에 40일 이상 해외출장. 출장가서 하는 일? 롤러코스터 등 온갖 놀이기구를 타며 놀기. 국내에서도 밤이 되면 요즘 ‘뜬다’는 나이트클럽 순례.

에버랜드 전략기획팀 김치호대리(28)는 동료직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땡보직’의 주인공. ‘편하디 편한 자리’에서 ‘일 같지 않은 일’로 월급을 타는 김대리. 도대체 신은 공평한 것인가?

▼땡보직은 있다▼

‘땡보직’은 군대에서 쓰이는 일종의 속어. 삽질을 해도 3년, 펜을 놀려도 3년인 군생활에서는 오로지 내 한 몸 편한 게 ‘장땡’이라는데서 나온 말이다. 대체로 행정병이 땡보직 1호로 꼽혀왔으며 이밖에 보일러병, 장교의 비서격인 당번병 등도 행정병 못지 않은 땡보직으로 부러움을 받아왔다.

직장에서도 땡보직은 20,30대사이에서 두루 쓰이는 말. IMF관리체제 이전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던’ 연공서열제 시절에는 일에 큰 부담없고 ‘칼퇴근’할수있는자리가 땡보직이었다.

또 같은 월급 받으면서 김대리처럼 해외출장 자주 다니고, 별로 움직이지 않아도 성과가 크게 나오는 자리가 부러움 섞인 시선을 모았다. 무역업체인 H주식회사에서 화학소재 수출을 담당하는 박대리(29)의 푸념.“내가 1년에 올리는 매출은 기껏해야 수십만달러지만 정유 수출팀의 경우 한 건에 수백만달러다. 똑같이 일하고도 내 실적은 잘해야 그들의 10분의 1수준…”

▼땡보직은 없다▼

지식경영이 ‘화두’가 된 요즘, 땡보직의 개념도 바뀌었다.

팽팽 돌아가는 ‘메인 트랙’에서 숨가쁘게 뛰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부각되거나, 회사를 떠나서도 어디에서든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자리가 요즘의 땡보직.

LG인터넷에서 삼성물산 인터넷사업부로 자리를 옮긴 임지현대리(26·여). 여성에, 아기까지 둔 ‘이중의 굴레’를 지녔으면서도 한창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기업의 중심부로 자리를 옮겨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에버랜드 김대리에게도 동료들은 “좋겠다, 놀고 월급 받아서”라고 얘기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2001년 창사 25주년을 맞아 테마파크를 변신시키는 작업의 중심에 김대리가 있기 때문.

최신 놀이기구를 철저하게 선별하기 위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놀이기구도 목숨걸고 타야 하는 김대리는 “편하고 즐겁다는 의미의 땡보직은 이제 없다”고 단정지으면서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내가 전문가로 크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한다면 그게 땡보직이 아니겠느냐”고 반문.

대부분의 기업에서도 과거 총무 인사 등 ‘행정병류’의 자리가 땡보직으로 각광을 받은 데 반해 요즘은 기획 마케팅 영업 등 ‘소총수류’의 현장직이 땡보직으로 뜨고 있다.

▼땡보직을 위해서라면▼

그러나 전직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땡보직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샐러리맨 사이에서는 요즘 무급 휴직, 퇴직붐이 일고 있는데….

에버랜드의 경우, 직원 500여명 중에서 20여명이 현재 무급휴직 중. 이들은 제2의 김대리를 꿈꾸며 MBA를 따거나 테마파크 분야의 전문가가 돼서 조직의 중심부로 다가서기 위해 2년치 월급을 포기했다.

무급휴직제도가 없는 LG―EDS의 경우도 월 평균 2,3명의 직원이 대학원진학과 어학연수를 이유로 비공식 무급휴직을 요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지금은 좋지 않은 타이밍”이라며 신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헤드헌팅업체 드림서치의 이기대사장에 따르면 경기가 살아나면서 지난 여름을 기점으로 앞으로 6개월∼1년동안 소위 땡보직 자리는 ‘구인난’.

이사장은 “이 시기엔 회사를 떠나지 말고, 계속 땡보직 자리에 관심을 보이면서 밤이나 새벽을 이용해 자기계발로 ‘부가가치’를 높이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