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를 꿈꾸는 지망생의 가슴 속엔 존경하는 프로페셔널이 있기 마련이다. 감독 지망생은 어떤 감독을, 만화가 지망생은 어떤 만화가를 자신의 목표나 꿈으로 삼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런 벽을 넘어선 프로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도 있다. 이 인물이 오랜 경력의 원로급이 아니라, 동시대의 사람이라면 가히 천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순정만화가인 ‘가미조 아츠시’도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 그의 복사판 같은 만화를 그리는 작가가 있을 정도다.
가미조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SEX’.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흑백의 그림 속에 불현듯 등장하는 빨간 색상의 꽃이나 귀걸이 같은 것이다. 마치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보고 있는 느낌. 만화가 영화보다 먼저 나왔다.
독창적인 캐릭터, 대사보다는 표정과 몸짓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힘, 때로는 완전히 생략하는가 하면 때로는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배경 화면의 묘미, 영화의 오버랩 기법의 활용, 스크린톤만으로 구성한 그림 등 전위적인 연출이 번뜩이는 만화다.
그러나 이 만화의 상업성은 제로에 가깝다. ‘SEX’라는 작품도 파격적인 제목과는 달리 야한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상처입은 10대들의 내면을 그리고 있는 스토리는 졸릴 정도로 재미없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좀처럼 단행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행본 제1권이 나온 것은 1989년. 그런데 제2권이 나온 것은 4년 뒤인 1993년이고, 3권의 경우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다.
가미조의 경우처럼 천재나 전위 작가들은 대체로 상업적인 인기와 거리가 멀다. 결국 그들의 역할은 대중이 아니라 프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김지룡〈신세대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