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장악음모’관련 문건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이 확산되며 국회의원의 국회 내 발언에 부여되는 ‘면책특권(責特權)’의 한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문건을 공개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문건 작성 및 보고라인의 인물로 지목한 이강래(李康來)전청와대정무수석은 “헌법소원을 내서라도 명예훼손에 대한 시비를 가리겠다”는 입장인 반면 정의원은 면책특권을 내세워 검찰조사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 과정에서 파생된 고소사건을 맡은 정상명(鄭相明)서울지검 2차장검사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면책특권의 범위와 한계”라고 말했다.
▼英 '권리장전'서 유래▼
◇면책특권의 뜻과 유래
우리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면책특권은 영국에서 왕권(王權)을 견제하기 위해 처음 마련된 제도적 장치로 1689년에 제정된 권리장전(權利章典)의 제1조 9항은 “의회 내에서의 발언 토의 기타 절차는 법원 또는 외부의 어떠한 장소에서도 탄핵되거나 문책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미국 연방헌법은 이를 이어받아 명문 규정을 뒀으며 오늘날 전세계 대부분의 헌법이 이를 인정하고 있다.
▼교사-방조자 처벌가능▼
◇면책의 내용과 효과
국회 외에서 법적 책임, 즉 민사 및 형사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면책은 재임중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임기만료 후에도 적용된다.
면책특권은 책임을 면제시킬 뿐 위법성을 조각(阻却)하는 것은 아니므로 의원의 발언을 교사 또는 방조한 사람은 법적 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경우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는 문건을 공개될 것을 알면서 정의원에게 전달한 사람은 정의원에 대한 간접정범으로 처벌받게 된다.
◇면책대상 행위
면책을 받게 되는 행위는 ‘국회의원이’ ‘직무상’ ‘국회 내에서’ 행한 발언과 표결이다. ‘국회 내에서’란 국회의사당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의사당 밖이라 하더라도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활동한 경우는 이에 포함된다. 연세대 법대 허영(許營)교수는 “특정 장소나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국회의 기능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면책특권의 한계와 판례
국회에서 발언하기 전에 미리 발표하거나 국회 내에서 한 발언을 다시 국회 밖에서 발표하거나 출판하는 경우가 문제다.
서울형사지법은 87년 유성환(兪成煥)의원의 이른바 국시(國是)논쟁 사건에서 ‘직무상의 발언’을 좁게 해석, 유의원이 대정부 질문 원고를 발언 30분 전에 기자들에게 배포한 것은 면책 대상이 안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1심 판결은 면책특권의 본질과 기능을 오해했다”며 이를 깨고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또 검찰도 97년 11월 국회 예결위 질의에 앞서 ‘부산에 있는 건설업체가 아파트 건설사업권을 제삼자에게 양도하는 과정에서 받은 수백억원 중의 일부가 모 대선후보의 경선자금으로 흘러갔다’는 내용의 자료를 배포, 국민신당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국민회의 추미애(秋美愛)의원에 대해 면책특권을 인정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국회 내 발언을 국회 밖에서 반복한 경우에 대한 판례는 아직 없다.
김철수(金哲洙·전서울대 법대 교수)탐라대총장과 권영성(權寧星)전서울대법대교수는 자신들의 저서에서 “국회 내에서 한 발언이나 표결일지라도 그것을 다시 원외(院外)에서 발표 또는 출판한 경우에는 면책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허교수는 “국회 밖에서 반복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국회발언을 보충하는 것이거나 연장선상에 있다면 당연히 면책대상이다”고 말했다.
▼명예훼손 여부도 팽팽▼
◇명예훼손 문제
물리적인 의사표시, 예를 들면 폭력행위나 험담 등은 면책대상이 아니라는데 헌법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독일기본법(헌법)은 “국회 내의 행위라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적인 경우에는 면책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학자들도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사생활에 관한 발언은 면책대상이 아니다”는데 견해가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문제는 정의원의 이전정무수석에 대한 발언이 ‘명예훼손적’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허위주장인 이상 명예훼손이 된다”는 견해와 “험담이나 비방이 아니고 공익 목적으로 한 것이므로 명예훼손이 아니다”는 견해가 대립돼 있다.
〈이수형·신석호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