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는 인간복제를 규제하는 법을 둘러싸고 3년째 논란을 벌이고 있다. 97년 대통령 직속의 생명윤리자문위가 만든 ‘인간복제금지법안’은 상원에서 다른 법안 더미와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최근 클린턴이 상원에 법안 통과를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외신 보도다. 이 법안이 통과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은 생명공학 기업가들과 과학자들이다.
▼복제행위-기술 구분 필요▼
한국에서는 일부 전문가들조차 클린턴의 인간복제금지 법안이 인간복제 연구를 폭넓게 금지하고 있고 공화당 의원들이 생명공학 산업 육성을 위해 이 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이 법안은 ‘과거 1년 동안 인간복제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연방 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법안은 ‘체세포를 이용한 핵치환(核置換)술로 조작한 수정란을 키워 여성의 자궁에 넣는 등의 방법’으로 인간복제의 범위를 좁혀 놓았다.
아버지나 어머니와 똑같은 자녀를 만드는 ‘인간복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기존 법을 모두 뜯어고쳐야 할 정도로 법적 혼란을 일으킨다. 복제인간은 헌법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갖는가? 주민등록 신청 때 가족관계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미성년자로서의 법률행위를 할 때 누구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한국에서도 인간복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말 경희대의료원 연구팀이 인간복제의 초기실험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시민단체들이 즉각 항의시위를 벌였다. 최근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생명복제기술합의회의는 공청회를 열고 정부에 “모든 복제 관련 연구를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선진국의 관련법은 ‘인간복제 행위’와 ‘복제기술 이용’을 엄격히 구분한다. 선진국의 법도 인간복제행위를 끔찍한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90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수정란 및 배아(胚兒·Embryo)보호법’은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복제 △초기 수정란 세포를 융합해 두 개체의 특성을 모두 지니도록 만든 ‘키메라’ △다른 종류의 난세포와 정세포를 융합해 만든 혼혈종인 ‘하이브리드’ △성염색체에 의해 선별된 정자를 난자에 넣어 수정 등을 모두 형사처벌 대상으로 했다.
미국의 클린턴법안은 인간복제 범죄에 25만달러의 벌금을 매기고 이익금을 환수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화당에선 이에 더해 법무부장관이 복제행위를 한 기업이나 과학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공중위생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의학적 유용성 고려해야▼
이처럼 인간복제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범죄행위이지만 복제기술을 이용한 질병치료 및 의학적 연구까지 차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과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미국 공화당의원들은 클린턴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로 인간복제 연구를 허용하다 보면 배아가 실험실에서 무분별하게 처리될 수 있고 자궁이식을 위해 팔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들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도 원천적으로 모든 연구를 법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미주리주 출신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은 클린턴법안이 금지영역보다 훨씬 범위를 넓혀 ‘실험실의 세포계 배아 태아 등의 연구 모두를 제한해야 한다’는 법안을 상원에 내놓았지만 어디까지나 연방자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적법한 민간 차원의 연구에는 숨통을 터 놓은 것이다.
독일의 배아보호법도 5조에서 생식세포를 인공적으로 조작하면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에 처하지만 수정에 이용할 가능성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어 놓았다.
이형석변호사는 “정신적 자유에 속하는 학문의 자유를 무조건 침범할 수는 없다”면서 “실용적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서울대의대 생화학과 서정선교수는 “수정란이 배아로 되기 직전인 세포단계는 현재 의학계에서 ‘몸’보다는 세포로 간주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서교수는 “이 단계에서 장기로 분화할 가능성이 큰 간(幹)세포를 뽑아내 배양해 연구하면 암 동맥경화증 당뇨 등의 치료를 앞당길 수 있고 잘린 사람의 팔이 다시 자라나게 하는 치료도 이론상 가능하다”고 의학적 유용성을 강조한다.
▼세계 시장규모 120조 추정▼
인간복제기술의 경제적 효과는 엄청나다. 생명공학 기업들은 내년 유전자 치료의 시장 규모가 한국 3조2000억원, 세계 1000억달러(약120조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유전자치료 중에서 가장 앞선 방법이 생식세포를 이용한 것이다.
신현호변호사는 “현재 한국에서는 생물특허에 대한 개념조차 희박하지만 선진국에선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며 “미국은 생물특허권을 내세워 다른 나라의 유전자치료를 막으며 막대한 수입을 올릴 것이 예상된다”고 말한다.
87년 미국 특허청은 인간의 신체를 제외하고 모든 다세포 유기체에 대해 특허권을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 정부는 파나마 파푸아뉴기니 솔로몬군도 등 주민의 세포계(細胞系)에 대한 특허권을 얻었다.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기업들은 유럽연합에 집요한 로비를 펼쳐 97년 생물특허를 인정한다는 결정을 얻어냈다. 따라서 인간복제기술을 통해 얻어낸 각종 유전자치료술에 대한 특허도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다. 지난해 복제양 돌리를 선보인 영국의 로슬린연구소는 최근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동물의 복제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미국과 유럽의 특허청에 출원했고 미국의 한 회사와 100만달러에 기술이전 계약을 했다.
신변호사는 “인간복제 연구의 가이드라인을 법안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인간복제는 막아야 하지만 연구 자체를 금지하면 국익에 해가 되고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말한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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