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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서갑숙씨 수기 외설시비]찬반논쟁

입력 | 1999-10-28 21:26:00


《최근 탤런트 서갑숙씨가 자신의 성체험을 담은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출간하면서 외설논쟁이 일고 있다. 외설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노골적 성표현으로 호기심을 부추기고 특히 청소년 교육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외설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은 “성경험을 용감하게 고백함으로써 남녀의 성평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노골적 표현 청소년에 악영향▼

영화 ‘8㎜’ 내용 중에 포르노 영화배우를 시켜주겠다며 소녀를 유인해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는 판단력이 약한 청소년들이 이처럼 성(性)산업에 이용되고 있다. 출판영상물 시장에는 서씨의 수기보다 몇 배 더 심한 음란물이 수두룩하다.

서씨의 ‘수기파동’은 색깔이 좀 다르다. 우선 유수한 언론사의 자회사가 어떻게 이런 책을 출판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서씨는 탤런트로서 청소년 TV드라마에서 ‘선생님’역으로 출연했다. 시청자들은 실제 인물과 TV에 비친 이미지를 혼동한다. 서씨 수기는 처음에는 미성년자에 대한 유해표시 없이 판매됐고 검찰 내사설이 보도되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문 사회과학 서적은 외면하는 독자들이 선정성으로 도배한 책을 부끄러움 없이 사보는 것도 문제다.

노골적 음란물은 그나마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표지를 붙여 부작용을 최소화하지만 서씨는 이런 정도의 자기검열도 없었다. 자녀교육이나 주위에 대한 예의 등 삶의 기본가치보다 성적 쾌락이 우선한다는 말인가.

누구나 강압적 규제가 없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바란다. 그러나 고급문화를 쾌적하게 즐길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청소년들은 모방심리가 강해 섹스산업에 희생될 우려가 있다. 문화소비자들이 저질의 책을 도태시킬 만한 자질을 갖추어야 하지만 문화상품 공급자도 책임을 망각해선 안된다. ‘문화권력’은 대중을 교묘하게 지배하며 그 폐해가 쉽게 은폐된다. 가끔 저항적 몸짓으로 자기의 부정적인 면을 위장하며 지적 기반이 약할수록 선정성과 상업성을 추구한다.

규제가 사라지면 지상낙원이 될 것 같지만 포르노와 마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나라일수록 무감동 무기력 무의욕 상태의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 성욕을 너무 억제하면 신경증에 걸릴 수도 있지만 성욕 지상주의도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짐승과 달리 인간에게는 최소한의 죄의식과 양심이 있어야 한다. 쾌락에만 탐닉하는 인생은 결국 황폐할 수밖에 없다. 양식있는 부모들은 자녀가 ‘짐승의 나라’에서 살길 원하지 않는다.

이나미

▼남녀 性평등 인식시키는 계기▼

서갑숙씨의 수기는 적나라하다. 그 때문에 충격을 받은 사람이 적잖은 것 같다. ‘적나라하다’는 것은 숨김이 없다는 뜻일 뿐 그것만으로 음란물이나 포르노로 단정할 수는 없다. 포르노는 성을 유희로, 가벼운 장난으로 취급한다. 서씨의 책을 포르노로 보기에는 장난기가 전혀 없고 오히려 너무 진지하다. 대부분의 성체험 고백은 자신의 실패담을 담고 있다. 포르노는 강간마저도 해피엔딩으로 끝내며 읽는 사람에게 동정을 유발시키는 경우는 없다.

서씨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탤런트가 공인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TV 브라운관이라는 가상현실 속의 존재다. 드라마 속의 역할과 현실의 사생활은 분명히 다르며 자신의 사생활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일각에서는 수기 출판을 상업주의라고 비판한다. 시장경제 상품은 많이 팔리는 것을 전제로 생산된다는 점에서 모두 상업주의 상품이다. 책이 팔려야 출판사나 저자뿐만 아니라 도매상 서점 종사자들이 먹고 살 수 있다. 진정한 양서가 출판 유통되기 위해서 베스트셀러는 필요하다.

서씨의 책이 문제가 된 것은 여성이 자신의 성체험을 있는 그대로 고백한 것이 최초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도 비슷한 책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결혼과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했을 뿐이다. 혼전이나 이혼 뒤의 일까지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런 점에서 서씨의 행동은 당돌하다기보다 용감하다고 평가된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모든 면에서 평등해야 가능하다. 성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성에 대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은 아직도 성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에 가깝다. 객체는 성에 대해 당당할 수 없고 제대로 즐길 수도 없다.

이젠 여성도 성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명제가 폭넓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여성이 무엇을 원하고 느끼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서씨 수기에 주장이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솔직한 고백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고백한 내용이어서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김지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