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폴 호프만 지음/승산 펴냄▼
“수학자가 수학을 창조하는 것인지 혹은 수학을 발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논의가 있어왔다… 만약 당신이 신을 믿는다면 그 대답은 자명하다. 수학적 진리는 신의 마음 속에 들어 있다. 인간은 그 진리를 재발견하는 것일 뿐이다.”―폴 에어디쉬
자신의 강의를 듣던 학생 한명이 수학을 그만두고 시인이 되기로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위대한 수학자 데이비드 힐버트는 주저없이 이렇게 말했다.
“잘했어. 그 친구는 수학자가 될 정도의 상상력은 없었으니까.”
▼평생 독신인 채 數와 씨름▼
미적분, 순열과 조합, 하다못해 인수분해…. 오늘도 수학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거나 중고교 시절 수학에 시달렸던 이들에게 이 책에 언급된 힐버트 같은 수학자는 ‘미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따라 수의 세계에 홀려 한평생 살아간 이들의 인생행로를 더듬어보는 일은 수학공부에 비해 훨씬 매력적이고 쉬운 일이다.
책의 주인공은 헝가리 출신 수학자 폴 에어디쉬(1913∼1996). 일생 동안 세계 각국의 학자 485명과 함께 1475편의 공동논문을 작성한 그는 20세기 수학의 ‘신화’다. 그는 평생 아내도 아이도 집도 갖지 않고 오로지 수학노트가 든 단출한 가방만 든 채 수학자와 수학문제를 찾아 세계를 떠돌았다.
그러나 저자는 기행투성이인 에어디쉬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쓰지 않았다. 대신 그가 해결한 수학의 오랜 숙제, 그가 영향을 주고 받았던 선후배 동료학자들과의 관계를 종횡으로 추적하는 방식을 택했다. 위로는 피타고라스로부터 아래로는 94년 수세기에 걸친 난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완전히 증명한 앤드루 와일즈가 언급된다. 덕분에 이 책은 ‘괴짜 수학자 에어디쉬를 통해 본 재미있는 수학사’로 읽힌다.
불쑥불쑥 수학공식이 등장하지만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수에 미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드라마틱하고 유머러스한 에피소드, 인물평 때문에 비교적 속도감 있게 읽힌다.
▼일화 중심 수학사 소개▼
일례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버트런드 러셀이 동료였던 걸출한 정수론학자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를 회상한 부분을 보자.
“그는 내가 5분 안에 죽으리라는 증명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내가 죽어서 슬프기는 하지만 증명을 얻었다는 기쁨 때문에 슬픔이 상쇄되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도대체 무엇이 수많은 수학자들에게 때로는 결혼식장, 심지어 장례식장의 손님으로 참석해서까지 수첩을 꺼내 들고 펜을 끄적거리게 만든 걸까. 이 책의 주인공 에어디쉬에 따르면 그 이유는 “수학이 영원불멸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인간의 행위 중 유일하게 무한한 것이다. 숫자 그 자체가 무한이기 때문이다.”
▼10년간 동행취재 산물▼
지난 봄 출간된 ‘화성에서 온 수학자’(지호) 역시 에어디쉬의 전기. 이 책은 저자가 10년간 에어디쉬를 동행취재한 결과물이고 ‘화성에서…’는 MIT대 물리학박사 출신의 브루스 쉐흐터가 에어디쉬 사후 동료들의 증언을 토대로 썼다는 것이 차이점. 하지만 내용 일부가 겹친다. 역자는 한국교원대 신현용교수(수학교육과). 374쪽 1만20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