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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괌사고 美조사단장 "고도경보장치만 작동했어도…"

입력 | 1999-11-03 20:03:00


97년 8월 괌에서 추락한 대한항공 801편의 사고원인을 조사해 온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그레고리 파이스 조사단장은 2일 NTSB 상임위원회에서 조사보고서가 큰 이의없이 받아들여지자 홀가분한 심정으로 동아일보의 인터뷰에 응했다.

NTSB에서 대형 항공기사고 선임조사관의 직책을 맡고 있는 파이스 단장은 93년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에어웨이 항공사의 쿠바 관타나모 공항 추락사고와 96년 밸루제트기의 플로리다주 에버글레이드 추락사고 등 굵직굵직한 사고를 조사해왔다. 올해로 NTSB 근무 20년째인 베테랑이다.

―대한항공기 추락사고 조사과정에서 느낀 가장 아쉬운 대목은….

“괌공항의 최저안전고도 경보장치를 꺼놓은 것이었다. 이 장치만 제대로 작동됐어도 64초의 시간여유가 있었고 그것은 사고를 막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조사보고서에서는 기장의 과실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기장의 과실을 포함해 고장난 최저안전고도 경보장치의 방치 등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를 유발했다.”

―그래도 만약 순서를 매긴다면 기장에게 첫번째 책임이 돌아가는가.

“우리는 사고 원인들을 첫번째, 두번째로 구분하지 않는다. 두 가지 원인이 동등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보고서에서는 기장의 과실을 ‘가장 개연성 있는 원인(probable cause)’으로 지적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가장 개연성있는 원인이란 원인을 확정짓지 않고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언제든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바뀔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기장의 피로도를 사고원인으로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기장이 ‘아 졸려’라고 한 말을 문화적 차이를 무시하고 과잉해석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물론 한국에서는 꼭 졸리지 않아도 ‘아 졸려’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런 말이 나오기까지 어떤 요인들이 있었느냐는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다. 기장이 11시간이나 깨어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 피로가 누적돼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고도를 말해주는 활공각유도장치(glide slope)가 고장나 있다는 사실이 이미 통보됐는데도 기장이 이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믿은 것이 사고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어떻게 그런 착각이 가능한가.

“93년 쿠바 관타나모공항 추락사고도 기장이 햇볕에 반사된 양철지붕들을 공항의 경계를 표시하는 점멸등으로 착각해 일어났다. 대한항공기에서도 부기장이나 기관사는 항공기의 고도가 지나치게 하강했다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기장은 활공각유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장은 부기장 등이 보고한 고도까지 내려갔다면 활공각유도장치에서 표시가 나올 것으로 믿었던 것같다.”

―최저안전고도 경보장치의 기능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최종 안전망(safety net)이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