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평소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배우려면 홍콩으로 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할 정도로 홍콩경제 예찬론자였다. 그러던 그가 중국반환 직후 “이제 홍콩경제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프리드먼 교수의 논거는 “홍콩이 반환되면 중국정부가 즉각 시장에 개입할 것이며 그 결과 경제가 자율성과 탄력성을 잃어 장기적인 쇠퇴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홍콩정부는 시장의 10%가량을 국유화했고 해외투자가들은 지금 홍콩에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정부의 시장개입이 경제에 미치는 해악을 단적으로 실증해 주고 있다. 물론 때에 따라 정부주도가 필요한 경우도 있기는 하다. 요즘 금융계 인사들을 만나보면 관치금융에 대한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지만 대우사태 등 작금의 상황아래서 금융시장에 완벽한 자율을 보장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범위와 강도가 제한적인 정부개입이 일정부분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2일 전경련이 차기회장 추대를 놓고 진통을 겪는 과정에서 관(官)의 개입이 구설에 오른 것은 문제가 다르다. 당장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전경련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대로라면 내정됐던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이 정부의 반대로 단에 올라보지도 못한 채 물러섰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 정회장이 수락의사를 밝혔을 때 정부 고위인사가 ‘재벌 오너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했던 것이나 최근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이 ‘반개혁적 전경련조직’의 쇄신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던 점은 정부개입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징표들이다.
전경련은 분명히 회원사의 이익을 추구하는 임의 친목단체다. 정부보조 한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순수 민간단체로서 어느 한 구석 정부로 부터 간섭을 받아야만 할 조건이나 이유가 없다. 위법적인 요소가 전혀 없었는데도 정부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민간기업의 사장도 누구가 해라, 야당총재에 누구는 안된다는 일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재벌이 몹쓸 짓을 많이 했고 그로 인해 국가경제가 멍들었기 때문에 재벌 오너들 모두가 꼴도 보기 싫다면 십분양보해 그 심정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해도 정부 인사들의 호불호에 의해 전경련이 회장선출의 자율성까지 빼앗긴다면 그건 정부권력의 횡포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역대 어느정권 아래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 업종별 대표중에서 수장을 뽑는 일본 경단련의 모범적 운영방식을 본받아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전경련의 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전경련 존립자체를 흔드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과정을 겪은 후의 전경련이 어떤 위상을 갖게 될지, 이러다가는 혹 전경련이 스스로 관변단체 처럼 행동하게 되는 일은 없을지 궁금해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에 뜨거운 맛을 본 전경련 회원사 대표들이 내년초 회장선출 때 서로 자리를 고사(固辭)하다가 전경련 자체가 고사(枯死)하는 일은 없을까 하는 점이다. 차제에 전경련도 다시는 이런 수모를 겪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재계에서 신망받는 김각중회장대행이 의욕을 잃은 전경련을 다시 추스려 이번 일을 둘러싼 주변의 걱정들을 일소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규민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