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고급 옷 로비 의혹사건에서 언론대책 문건 파동에 이르기까지 거짓말한 사람을 밝혀내지 못해 온통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두 사건은 마키아벨리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를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한다.
16세기 이탈리아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는 속임수 모략 등 온갖 술책의 사용이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권모술수로 남을 기만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얼굴 표정을 보고 타인의 의중을 짐작하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독심(讀心)능력은 다섯 살 때부터 갑자기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 사람이 네살까지 남을 속이는 능력이 없다는 통념을 뒤엎는 연구결과가 보고되었다. 누구나 거짓말하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먼 옛날 다른 짐승보다 몸집이 작은 인류의 조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활한 지혜가 필요했기 때문에 권모술수가 본능으로 진화되었다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타고난 거짓말쟁이인 셈이다.
옷 로비 의혹사건의 상류층 여인네들이나 언론대책 문건파동의 여야 정치인들은 어찌하면 거짓말 본능에 충실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 사람 역시 피노키오처럼 반응을 나타낸다는 전제 하에 개발된 장치가 거짓말 탐지기로 알려진 폴리그래프(polygraph)이다.
맥박 혈압 땀 호흡 따위의 생리적 변화를 측정하는 여행가방 크기의 장치이다. 사람이 거짓말하면 정서 불안으로 이러한 생리적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에 거짓말 여부의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폴리그래프 조사에서는 가령 “옷을 입어보셨습니까”처럼 사안과 관련된 질문은 물론이고 “나이를 속여본 적이 있나요”와 같은 무관한 질문을 뒤섞어 던지면서 생리적 변화를 기록한다.
폴리그래프는 범죄 수사는 물론 직원채용에 활용된다. 특히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의 정보수사기관에서 오래 전부터 직원 선발시 관례로 폴리그래프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미국에서 핵무기를 연구하는 3개 국립연구소 5000여 직원을 대상으로 폴리그래프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화제다. 핵무기 정보가 중국으로 유출된 혐의를 잡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비밀정보를 취급하는 민간 과학자들에게 폴리그래프 조사를 의무적으로 요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폴리그래프 조사의 정확성 여부다.
미국 폴리그래프 협회(APA)에 따르면 폴리그래프 조사의 정확성은 90% 안팎이다. 이를테면 5000건에서 500건은 유죄가 무죄로, 무죄가 유죄로 엇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짓말쟁이가 고급정보를 다루는 요직에 기용되고 무고한 사람이 직장에서 쫓겨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더욱이 폴리그래프 조사로 유죄가 무죄로 잘못 분류되는 경우보다 무죄가 유죄로 판단될 확률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죽하면 죄가 있는 사람은 얼른 폴리그래프 조사를 받아 혐의를 벗으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겼겠는가. 폴리그래프는 현대과학의 탈을 쓴 마술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찌하랴. 고문보다는 덜 비인간적인 수사기법인 것을.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