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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김영배-정영숙/유급 생리휴가 폐지

입력 | 1999-11-04 19:20:00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여성근로자의 유급생리휴가 제도에 대한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재계는 “외국에는 거의 없고 육체노동이 줄어들는 추세에서 여성 과보호 조항”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여성근로자의 대부분이 고용 임금 등에서 차별을 받는 상황에서 신체 특성을 무시하고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한다.》

▼찬성▼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21세기 직업능력 보고서’에 따르면 50년대 미국의 노동력은 전문가 20%, 숙련노동자 20%, 비숙련근로자 60%로 구성됐다. 이같은 비율이 97년에는 전문가 20%, 숙련근로자 60% 이상, 비숙련 근로자 20%로 바뀌었다. 업무 성격이 과거 육체노동에서 지식 중심적 업무로 바뀌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도 낡은 규제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특히 여성을 18세 미만의 청소년과 똑같이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보는 ‘여성 과보호 조항’은 문제가 많다. 그 중 ‘생리휴가 제도’가 대표적이다.

생리휴가 제도는 과거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요즘은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비율이 매우 저조하다. 노동강도가 약화되는 등 근무여건이 대폭 개선됐고 여성 스스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보호받기를 꺼리는 의식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리휴가제도는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를 빼고는 어느 나라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효용성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만큼 폐지해야 한다. 여성의 야근금지, 휴일근로금지, 시간외근로금지, 갱내(坑內)근로금지 조항도 없애야 할 여성과보호조항들이다.

정보기술의 확산으로 사무직 근로자에게만 의존하던 고용관행이 시간제근로 재택근로 등 다양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 시간외근로나 야간근로의 개념도 모호해지고 있다. 맡은 일을 끝마치기 위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97년 노동기준법 개정을 통해 시간외근로 휴일근로 야간근로 금지 규정을 없앴다. 현재 생리휴가와 임산부 보호규정을 여성보호 규정으로 두고 있지만 일본의 생리휴가제는 생리 당일에 취업이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 여성이 청구하도록 되어 있다. 의무적으로 매월 하루 유급 생리휴가를 주는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여성근로자가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모성보호의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여성은 유약한 존재’라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만큼 여성의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규정들은 없애야 한다.

김영배(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

▼반대▼

21세기 한국 사회의 화두는 남녀평등과 인권보장이다. 그동안 여성노동자들에게 가해졌던 각종 불평등과 부당대우는 개선돼야 한다. 여성노동 관련법 개정도 이런 기본 인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논의돼야 하기 때문에 여성근로자의 유급 생리휴가 폐지 주장은 시기상조다.

여성은 신체구조상 임신 출산 수유(授乳)라는 모성 기능을 가져 남성과는 생리적 정신적 특성이 다르다. 여성 특유의 생리기능과 모성기능을 보호함으로써 사회적 재생산이 원활하도록 보장하는 일은 사회 전체가 나눠야 할 책임이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노동조건을 제도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사회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재계는 유급 생리휴가가 여성 노동자들을 과보호하는 역차별적 규정인데다 기업의 비용부담이 높아 여성고용을 기피하게 하는 주원인이라는 논리로 폐지를 주장한다.

과연 기업주들이 여성고용을 기피하는 이유가 여성과보호 조항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94년 경영자총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의 63%가 “여성 보호규정이 기업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여성노동자의 71%가 4인 이하 사업장에서 기본적인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다.

전체 여성노동자의 53%가 비정규직이어서 고용과 임금은 물론 각종 사회보장제도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부분적인 보호조항을 들어 여성고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모성보호 및 사회안정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노동자의 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4인이하 사업장에까지 전면 확대해야 한다.

생리휴가 제도는 다른 나라와 단순 비교해 폐지를 주장할 사안이 아니다. 선진국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전체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건강휴가제나 전반적인 근로시간 단축 등이 선행돼야 한다. 여성의 저임금개선, 노동시간 단축, 휴가제도 사용, 모성보호 확대 등을 완전히 보장한 뒤 생리휴가 폐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정영숙(한국노총 여성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