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의 소환조사까지 급박하게 진행되던 언론대책문건 고소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당분간 숨을 고르는 단계를 맞을 전망이다. 검찰은 핵심관련자인 정형근(鄭亨根)한나라당 의원과 문일현(文日鉉)중앙일보 기자의 소환조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떠오른 핵심 쟁점별로 이 사건 수사의 과제와 문제점을 살펴본다.》
▼私信-원본의 행방▼
문건 원본과 사신은 이번 사건의 핵심 물증. 검찰은 여러 차례 “사신을 찾으면 문일현기자가 왜 언론문건을 작성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증거”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이처럼 중요한 대목의 수사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이종찬부총재 사무실의 압수수색에 대해 5일까지도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압수수색 시점을 실기(失期)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도준기자의 구속 이후에도 3쪽짜리 사신과 진본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이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지며 진작 압수수색을 했어야 했다는 것.
검찰은 “이번 사건은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 그 진술이 계속 오락가락해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이부총재 사무실 압수수색 여부에 대해서는 “사건 관련자들도 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진술로도 (문건과 사신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검찰은 ‘문기자만 돌아오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기자를 강제로 데려올 방법이 없는 실정이어서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의심받고 있다.
▼제3자 개입여부▼
이부총재는 4일 검찰 출두에 앞서 “문기자의 언론 문건 작성에 모언론사 간부가 개입됐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부총재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성명서 초안을 직접 작성했으나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 등 당내 인사의 반대로 포기했다는 것.
한사무총장은 4일 밤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이부총재가 성명서 발표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으나 ‘검찰 조사가 아닌 다른 형식의 발표는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며 만류했다”고 말했다.
이부총재는 그러나 검찰조사에서 “문기자가 제3자와 상의해 문건을 만든 것으로 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명(鄭相明)2차장검사는 5일 오전 브리핑에서 “이부총재가 언론사 간부 개입 여부를 진술했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이부총재의 진술 이후 새로운 참고인이 생기지는 않았다”고 밝혀 ‘문제의 언론사 간부’를 소환할 여지도 없어 보인다. 이 부분은 검찰의 발표대로 문기자를 조사한 뒤에나 위력을 발휘할 ‘태풍의 눈’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녹취록 존재여부▼
검찰은 “이부총재는 문기자와의 대화를 녹음하려 했으나 기기조작 미숙으로 실패했다. 녹음된 줄 알고 ‘녹취록이 있다’고 얘기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는 어렵다는 게 검찰안팎의 중론으로 이부총재나 검찰 양측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실패한 녹취록이 그동안 거론됐던 ‘최상주―문일현’의 대화인지 아니면 ‘이부총재―문일현’의 대화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모두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만일 이부총재의 진술대로 녹취록이 없다면 이부총재는 ‘녹음이 돼 있는지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녹취록이 있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거꾸로 녹취록이 있는데도 검찰이 이부총재의 말만 믿고 이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지면 압수수색 등을 하지 않은 검찰 초동수사의 결정적 실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최영훈·부형권기자〉c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