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에 걸친 교육개혁에서 우리 교육의 ‘한국병’에 대한 갖가지 처방이 나오고 지금도 각종 구조적 개혁이 추진되고 있지만 중고교 ‘교실’ 개혁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교실 붕괴’는 한국교육의 병통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교실이 무너지기 시작한지 오래인데도 교육개혁의 현란한 진열장에는 ‘교실붕괴’의 대안이 나온 적이 없다. 개혁이 외형적 구조에만 관심을 두고 전시행정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교육현장인 교실은 외면당했다.
▼'교실붕괴' 대책 미적▼
교육의 평준화 양산체제에서 학생들을 수동적 객체로 만든 주입식수업의 낡은 교수법 패러다임이 위기에 부닥쳤다. 후진국이 급속히 선진문화를 수용하는데는 자습서 ‘전과’가 필요악이었다. 교사의 권위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참고서 자습서 전과에서 시작됐다. 전과 속에 이미 교과서의 모든 해답이 다 나와있는데 교사의 수업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정보홍수, 지식범람의 정보화시대에 이미 교사가 정보 지식의 독점적 배급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고 교사의 가르치는 교수내용이 학생들을 졸리게 한다. 전과가 있고 4지선다형 시험제도 속에서 교실에서는 문제를 제기하기하고 학생 스스로 그것을 풀어 해답에 이르는 탐구과정이 빠지고 따라서 지적탐구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사실 학생이 학교에 반드시 가야할 절실한 필요성도 소멸됐다. 학생을 등교시키는 것은 다만 학부모의 성화같은 등교강요와 입시 뿐이다.
이렇게 ‘교실붕괴’에 뒤이어 오는 것이 미국 초중교의 골치거리, 중도탈락(드롭아웃)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이미 자퇴, 등교포기가 생기고 있다.‘탈학교’ 현상은 21세기를 앞둔 오늘에 현실로 되었다. 70년 미국교육개혁 보고가 ‘교실의 위기’(실버맨 지음)를 고발했고 정작 개혁의 초점은 교실의 개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탈냉전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중앙계획, 중앙명령의 지령 경제가 위기에 부닥친 것처럼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주입에 지쳐 버린 학생들을 언제까지나 꿔다놓은 보리자루로 만드는 교실도 벽에 부딪친 것이다. 주입식 지식배급과 암기의 속성학습형 교실에서 탈피해 학생을 능동적 탐구주체로 만드는 새 교실, 학생들이 발표하고 토론하는 학생참여의 ‘앙가쥬망’ 교실이 태동하고 있다. 교사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지식탐구생산의 조산원(助産員)’으로 역할 전환이 절실하다.
새교실에서는 학생이 지식과 진리를 스스로 탐구해 낳는데 교사는 산파구실에 그쳐야 한다. 이래야 주입식을 탈피해 탐구학습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새교실에서 학생이 능동적 지식탐구자로 거듭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리 머리 속에 자리 잡았던 피동적 명령복종의 학생상은 종언되고 있다.
▼신교육 시장질서 태동▼
일제시대 이래 제도권 학교는 중앙명령주의가 지배하는 교육병영 체제였다. 미래의 학생은 교육자유시장의 교육소비자로서 응당 소비자주권이 인정돼야 하는 시민사회적 시장형학교가 새로운 학교 패러다임으로 나타날 것이다.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왕이다. 탈공업화시대에는 서비스경제가 우위에 선다. 학교에서도 교육행정과 교사의 자세가 서비스 교육시대에 맞게 탈바꿈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는 다품종 소량생산 모델의 다양한 교육상품이 나와야 한다. 자유사회속의 ‘사회주의적’이었던 전국획일주의, 과평준화, 전국적 국영학력 평가제도 등 국영주의의 종말이 왔으므로 평가의 민영화를 서둘러야 한다. 신교육 100년만에 낡은 교육 ‘천동설’이 무너지고 교육 ‘지동설’의 새 패러다임 탄생의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대량전달 교육에 맞춘 과평준화의 학력평가제가 끝나고 필답보다 구술시험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전국획일의 수능시험의 중앙계획, 중앙명령주의가 종언을 고하는 교육의 신세기, 21세기 현실이 성큼 다가왔다. 교육에서도 정부가 주도하고 간섭하는 중앙지령 대신에 민영화시대, 교육시장고객 우대주의가 대두하는 신교육 시장질서가 태동하고 있다는 예감이 절실하다.
학생들의 자유선택, 정보홍수 속에서 의미 결핍증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 싱싱한 판단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탐구교실의 ‘교실개혁’이 시급해졌다.
신일철(고려대 명예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