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 용광로에 거듭 들어가 정련되어진 금(金)이 ‘24금’ 곧 순금이라는데 우리 국민도 곧 순금과 비슷한 존재들이 되지 않을까. 달아오른 용광로처럼 엄청난 대형 비리 사건들이 현재 우리 사회를 거듭 강타하고 있다. 언론장악문건, 맹물 전투기, 인천 무허가 호프집의 대형 화재 참사와 공무원 뇌물 수수, 고문 경찰 이근안, 옷로비 의혹과 조폐공사 파업 유도 의혹…. 사건 자체에 못지 않게 견디기 힘든 것은 사건 당사자들이 거짓과 은폐를 일삼는 철면피한 작태들이다.
문제의 대형 비리 사건들이 우리 사회의 실체를 들어낸다면, 그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는 사회적 인식과 대응의 형태를 들어낸다. 사건 내용에 관한 줄기찬 사실 보도들과 별도로 문화적 대응을 들어낸 기사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비리 당사자들의 공통 현상인 뻔뻔한 거짓말, 바로 그 ‘거짓말’을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해 내놓은 이성주 기자의 ‘과보호-학대받고 자라면…’(3일 C8면)은 그 순발력이 좋았다. 사건 관련자들의 입 부분 사진을 곁들인 것이 특히 백미였다.
책 소개 전문 페이지인 ‘책의 향기’(6일)면도 이처럼 부패하고 혼탁한 세태 속에서 어떻게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했다. ‘선비, 꽃을 기르며 道를 깨닫다’, ‘民談에서 배우는 ‘중년위기 극복법’,‘진리찾아 낯선 땅 절생활 하버드대 출신의 求道記’,‘전쟁원인을 알면 평화해법 보인다’,‘되살아난 ‘전쟁 망령’ 혼내는 지식인의 ‘反戰論’’….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이제 동아일보에 일주일에 세 번씩 번역 게재하는 뉴욕타임스면에 관해 생각해볼 때가 된 듯하다. 현재 언론학 전공자는 물론 일반 독자들도 그 면을 열심히 읽고 반응이 아주 좋다. 해당 면을 더 늘렸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런 현상은 종래 언론계에서 통용되던 외신과 국내기사의 상관관계에 관한 상식에 배치된다. 영국의 대표적 신문인 더 타임스가 견지하는 편집의 기본방침인 ‘신문의 격조를 높이려면 외신기사 비율을 늘이고 부수를 늘이려면 국내 기사 비율을 늘인다’는 그간 우리 언론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되었다. 외신은 세계 각국의 보도매체에서 좋은 기사들을 가려뽑아 번역하여 싣기에 기사의 품질이 뛰어나지만 독자들의 관심사와 거리가 있어 부수 올리는 데는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동아일보의 ‘뉴욕타임스’ 번역면은 독자들을 끄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획의 훌륭한 성공사례라고 꼽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안으로 상처를 지니고 있는 성공이다. 국제면에 실리는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고 뉴욕타임스면이라고 독립시켜 놓으면 열심히 읽는 현상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빠져있는 ‘브랜드’ 중독현상이 신문 지면에도 반영된 것을 입증한다.
물론 독립된 뉴욕타임스면을 통해서 독자들이 얻는 바가 적지 않다. 같은 이야기도 누구가 하는가에 따라 사회적인 주목이 달라지듯, 인간과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성향의 기사들이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효과가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동아일보 자체의 뛰어난 기획물들이 지면사정으로 제대로 게재되지 못하는 일이 흔한 현 실정에서 한 주에 세 차례 꼬박 실리는 뉴욕타임스 번역면은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동아일보의 아픈 상처일 수도 있다.
송우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