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의 한 주말 오락프로 기획자인 P책임프로듀서는 최근 이 프로의 리허설을 모니터로 지켜보다 갑자기 초조해졌다.노래를 부르던 그룹 ‘샵’의 한 여성 멤버가 배꼽이 드러나는 파격적인(?) 의상을 입었기 때문.
“좀 위험한가….” 전화로 현장에 있는 담당 PD와 의견을 교환하려는 순간, 다른 모니터로 그 장면을 보던 담당 국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신 제 정신이야!” P씨는 당장 의상 교체를 지시했고 그 멤버는 부랴부랴 점잖은 상의로 갈아 입고 다시 무대에 섰다.
이 해프닝은 공중파 방송사 중 KBS만 97년 봄부터 실시하고 있는 일명 ‘복장 규정’ 때문. △남성의 경우 장발이나 머리 염색,귀고리 착용 자제 △여성의 경우 짙은 원색의 머리 염색과 과도한 노출 자제 등을 명시하고 있다.‘공영방송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복장을 위해서’라는 것이 KBS측의 설명.
현재로선 대부분 연예인들이 이 규정에 ‘협조’하는 편이다. 최근 5집 ‘바보’를 내고 머리칼을 빨갛게 염색한 가수 김장훈도 KBS에 오면 대기실에서 염색용 검정색 스프레이로 ‘얌전하게’ 변신한다. 섹시함이 주무기인 여성 그룹 ‘베이비 복스’도 KBS에서는 배꼽을 가린다.
하지만 스타급 가수는 “노래의 이미지에 복장을 맞춘 것”이라며 스타일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KBS는 ‘울며 겨자먹는’ 입장이 된다. 올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H.O.T.’와 ‘S.E.S.’가 대표적. ‘H.O.T.’는 9월 4집 활동 이후 KBS에만 출연하지 않았다. 최근 3집 활동을 재개한 ‘S.E.S.’도 마찬가지.
그러나 KBS 내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있다. 30대 초반의 한 오락PD는 “서태지가 머리 염색한 채 복귀해도 모른 척 할거냐”고 말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