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호’란 타이틀은 자신의 노력과 시대적 상황이 맞아 떨어졌을 때 탄생합니다. 여성이란 점이 핸디캡이 아니라 프리미엄으로 작용하지요. 그러나 후배들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부담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지점장 1호’ 이동연씨(40·평화은행 압구정동지점장)는 최근 수필집 ‘나도 마누라가 있었으면 좋겠다’(미래사)를 펴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性차별 오기로 이겨내▼
국민은행 중견행원 공채원서 접수창구에서 “여잔 안뽑는데요”라는 말에 오기로 원서를 접수시켰고 그 은행에서 “남자직원과 똑같이 대우해주면 세몫은 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치열하게 일해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 92년 연공서열을 뛰어넘기 위해 기회가 많은 평화은행 창립멤버로 들어갔고, 결국 ‘여성1호’라는 타이틀을 활용해 레이디지점(여성고객을 겨냥한 직원 전원이 여성인 지점)을 탄생시켰다.
“96년 9월 문열었을 때 지점장인 저를 포함해 9명이 모두 여성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은행에서 대출업무 담당은 100% 남자직원의 일이었기 때문에 여성이 해낼 수 있을지 저 자신도 걱정했어요.”
이지점장은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잠재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 기회가 주어지자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던 것.
이지점장은 지난 봄 새벽에 출근했다가 목격한 탈의실 장면을 잊지 못한다.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싶어 은행문 앞 벨을 조심스럽게 누르자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여직원이 나타났고 탈의실에는 또다른 여직원이 분주하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3년연속 최우수지점▼
새벽까지 밤을 새고 일했지만 여전히 생기발랄한 여직원들을 보며 ‘남성은 주업무, 여성은 보조업무’라는 직장분위기에서 벗어나 여성이 주도적으로 일할 때 얼마나 즐겁고 활기찰 수 있는지 절감했다는 얘기.
카페같은 분위기에서 직원들은 손님접대를 능란하게 해냈고 지난달 26일 이지점장은 저축유치 증대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모두 자발적이고 즐겁게 일한 결과. 평화은행 경영평가에서 3년 연속 1위 지점의 영예도 안았다. ‘나도…’는 이같은 압구정동지점 직원과 고객들의 이야기로 엮어졌다.
지금 압구정동지점은 엄밀히 말해 레이디지점은 아니다. 지난해 6월 금융기관 구조조정으로 인근 지점을 인수하면서 남자직원을 받았기 때문. 대리 1명과 행원 1명이 남자다.
여신 및 외환창구업무를 담당하는 윤미씨(28)는 “당시 남자직원을 받는 것에 반대했다. 남자들이 섞이면 손님접대가 즐거운 봉사가 아니라 ‘여직원이나’ 하는 저급한 업무로 취급돼 우리 지점의 강점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지점장의 생각은 달랐다.
▼"홧김에 사표 안될말▼
“어느 조직이건 남녀가 어울려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여자끼리만 모인 집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보다는 남녀가 함께 있는 집단에서 그들과 경쟁하며 주도적 자세를 갖는 것이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여성지점장만이 후배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구요.”
이지점장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끝까지 다녔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며 ‘세상의 모든 후배’들에게 “더럽다고, 이런 대접받느니 차라리, 하며 그만둘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남아 기회를 찾으라”고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