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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미스터]N세대 직장인 "묻지마, 다쳐"

입력 | 1999-11-07 20:05:00


“묻지마. 다쳐.”

누구에게 온 전화인지를 묻는 남자친구에게 여자가 하는 말. 휴대전화 CF카피로 처음 등장, 젊은이들 사이에서 올해 최고의 유행어로 떠오른 대사다.

지극히 단순한 이 말이 왜 젊은층을 사로잡은 것일까.

현대경제연구소의 황동언 연구위원은 “그들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는 성향을 강하게 지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치기 싫어 남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상대방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원치 않는 이들의 특성이 새 밀레니엄의 주목할 만한 흐름으로 대두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것은 부모의 과보호 밑에서 어려움없이 성장한데다 휴대전화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대면접촉이 줄어드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

현대경제연구소가 기업 경영진을 위한 참고자료로 펴낸 ‘지식경제리포트’ 최근호에서 이같은 젊은이들의 특성을 분석한 황연구위원은 “일본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들을 (초대)신인류의 후배이자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뜻에서 ‘진성 신인류(眞性 新人類)’로 부른다”고 소개했다.

동아일보 미즈&미스터팀은 젊은층의 대인관계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결혼정보회사 ㈜듀오(www.duoinfo.co.kr)리서치팀과 함께 9월27일부터 한달간 서울의 24∼36세 미혼남성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실시했다.

조사대상을 미혼남성으로 제한한 것은 데이트상대와의 관계를 보기 위해서이며 학력과 소득수준, 재산정도에 따른 차이를 측정하기 위해 직장인을 대상으로 삼았다.

조사에는 LG텔레콤 현대전자 등 일반대기업, 지오시스템 등 중소벤처기업, 휴렛팩커드 등 외국계기업, 국정홍보처 현대자동차연구소등 공공기관 및 연구소 등의 종사자와 함께 은행원경찰교사 등 385명이참여했다.

응답자들의 휴대전화에 메모리된 전화번호 수는 평균 36. 9개, E메일에 입력된 수신처는 20개였으며 주당 E메일 전송횟수는 11.5건이나 되는 등 N(Net)세대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다치고 싶지않다’증후군▼

언제 가장 큰 좌절감을느끼느냐는질문에 조사대상자들은 ‘대인관계에서 실패할 때’(30.4%)를 첫손에 꼽았다. ‘애인과의 결별’(18.9%)까지 합하면 무려 49.3%. N세대는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쉽게 상처받기 때문에 거꾸로 상처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일에 대한 능력부족을 느낄 때’는 24.3%였으며 ‘직장내 승진 누락’‘집단내 정보소외’는 각각 8.1%, 경제적 압박때문에 좌절한다는 응답은 2.7%에 불과했다.

대인관계에서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경향은 소득과 학력수준이 높을수록 강하게 나타났다. 직종별로는 공무원 연구직 정보통신관리직에서 두드러졌다.

상처를 받을 경우 소득이 많을 층일수록 ‘원상회복’대신 ‘독한’대처법을 선택하고 있었다. 월소득 210만원이상의 35.5%가 ‘학창시절 친구라도 상처를 주면 관계를 단절한다’고 대답, 월소득 150만원이하에서의 같은 응답(14.9%)보다 두배 이상 높았다.

▼포트폴리오형 인간관계▼

특정 인간관계에 몰입할 경우 상처받을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따라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N세대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비슷한 깊이로 유지함으로써 위험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경제학에서 파산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산운용을 저축 주식투자 부동산구입 등으로 다변화시키는 ‘포트폴리오’와 같은 원리.

조사결과 이들이 정기적으로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의 수는 평균 28.2명. 그러나 ‘대인관계에 의미’에 대해서는 3명 중 1명꼴로 ‘인간적 유대’가 아닌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은 소득과 학력이 높을수록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수입 210만원이상에서는 81%가, 대학원이상 학력의 48%가 ‘그렇다’고 답했다. 업종별로는 정보통신 관련직(50%)에서, 회사형태로는 벤처기업과 외국계회사에서 두드러진 반면 교직에서는 가장 낮았다(15.8%).

▼총량개념의 연애▼

포트폴리오형 인간관리는 연애관계에서 특히 ‘본색’을 드러낸다. 본래의 여자친구 외에 다양한 목적의 여자친구를 두며 쾌락의 ‘총량’을 일정하게 경영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성관계에서도제약이 두지않는등 인간관계에서금기의 개념이 점차 희미해지는 것(Taboo―free)으로 나타난다.

연애 중이라고 밝힌 응답자의 3명중 1명은 ‘2명 이상의 여성을 사귄다’고 말했다. 데이트상대는 평균 2.3명. 특히 이들이 각 파트너와 평균 교제하는 기간은 18.3개월로 ‘1명만 만난다’고 대답한 사람(23.2개월)보다 짧았다. 복수교제자 중 ‘하루 2명 이상의 상대와 데이트한 일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무려 70.5%.

성관계에선 복수와 교제하는 사람이 더‘왕성한활동’을하고 있었다. ‘일편단심형’중엔 35.3%만이 지금의 상대와 성관계를 갖고 있다고 답한 반면 2명이상과 교제하는 남성의 75.9%가 ‘1명 이상의 상대와 성관계를 맺고있다’고 밝혔다.

복수데이트를 즐기는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다양한 이성과의 만남을 즐기기 위해(33%) △자연스레 발생한 관계를 굳이 정리할 필요가 없으므로(28.3%) △한 사람으로는 얻고 싶은 모든 것을 채울 수 없으므로(17%) △기분과 시간에 따라 선택이 용이하므로(13.2%) 등을 들었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