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한국 사회의 가장 암적인 병이다. 이 병을 고쳐보겠다고 역대 정부가 그동안 백약을 썼으나 문자 그대로 백약은 무효였다.
이번 인천 호프집 화재를 통해 대민(對民) 업무를 맡은 공무원들의 부패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50여명의 꽃다운 생명이 불타 숨진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에는 무려 60여명의 경관, 소방관, 구청 직원들이 호프집 주인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과거가 축적되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뇌물 금액은 수입의 20%라고 하니 어떤 사업에서 뇌물의 비중이 20%라면 그 나라는 가히 ‘뇌물 공화국’이라 해서 하나도 과함이 없다.
◇공무원 기강만 탓하나
왜 이렇게 백약이 무효일까. 그 이유는 의사가 병세를 잘못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부패의 문제를 공무원의 기강 문제로만 취급했다. 그래서 적발된 부패공무원을 처벌하는 것으로, 그리고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그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부패는 단순한 공무원의 기강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의 문제이다. 문화의 문제를 단순한 기강의 문제로 접근했으니 해결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떤 문화의 문제인가. 바로 ‘의리’와 ‘정’이라는 문화의 문제이다. 서양을 ‘합리’의 사회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는 ‘의리’의 사회이다. 서양을 ‘개인’ 중심적 사회라고 한다면 한국은 ‘집단’ 중심적 사회이다. “자장면으로 통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이 한국의 문화이다.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의리와 정이 합리를 능가하는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합리를 어긴 사람은 별 비난을 받지 않지만 의리를 저버린 사람은 어디에 비할 바 없는 비난을 받는다. ‘정’이란 의리라는 동전의 뒷 면일 뿐이다. 의리의 사회에서는 의리와 ‘정’을 표시하는 자가 존경을 받는다. 반면 이 의리와 정을 표시하지 않는 사람은 한마디로 ‘싸가지’없는 사람으로 인정되어 대접을 못받는다. 그래서 의리와 정을 표시하고 또 받는 것은 상당 부분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한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예부터 이 ‘의리’와 ‘정’을 ‘현금’을 주고 받는 것으로 실천하고 표현했다.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너나할것없이 현금을 주고 받는 것이 그 가장 단적인 예이다. 서양에서는 관혼상제에 현금을 주고 받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이다. 과거 군사정부의 독재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액의 현금을 부하 직원들에게 줌으로써 자신의 의리와 정을 표현했다. 촌지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부패추방은 사회의 몫
이렇게 현금을 받은 장관과 장군은 스스로도 부하들에게 현금을 주고 또 이렇게 현금을 받고 주어 본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현금을 받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진다. 이렇게 하여 현금을 주고 받는 일은 대통령부터 한국 사회 전체에 속속들이 횡행하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관행이 되어 버렸다.한국 사회에 이렇게 뇌물이 횡행하는 것은 거의 모든 뇌물이 ‘의리’와 ‘정’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주는 사람도 별로 가책을 느끼지 않고 받는 사람도 별로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많은 경우 한국 문화의 일부분을 실천한다고 느끼며 또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스스로들 그렇게 정당화한다.
‘상납’이란 것은 소위 의리와 정으로 포장되는 대표적인 것이다. 상납하는 자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면서 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돈을 벌고 ‘관리’ ‘나리’는 박봉에 공익을 위해 고생하시니 내가 조금씩 성의 표시하는 것은 의리의 면으로 보나 정의의 면으로 보나 너무나 당연하다.”
이렇게 의리와 정으로 포장된 뇌물은 받는 사람의 부담을 엄청나게 줄여준다. 그리고는 그것을 준 사람을 소위 ‘싸가지’있는 사람으로 여기며 ‘오는 정이 있으니 가는 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도와 주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부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이 의리와 정, 그리고 현금간의 연결고리를 끊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부패는 공무원의 기강이 아니라 문화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전성철〈국제변호사·부드러운사회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