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대책문건 고소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여러 차례 “이번 사건의 출발점은 문일현 중앙일보 기자다. 문기자를 조사해야 사건의 실체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문기자가 8일 귀국,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과연 문기자를 조사하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까. 검찰이 문기자를 통해 밝혀야할 핵심적인 사항과 그의 귀국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문건작성 동기와 경위▼
검찰이 문기자에게 기대하는 핵심 물증은 문기자가 이종찬국민회의 부총재에게 보낸 3쪽짜리 사신(私信)이다.
검찰은 문기자가 이부총재에게 보낸 7쪽짜리 언론대책문건 원본과 3쪽짜리 사신의 실종으로 ‘물증은 없고 엇갈린 진술만 있는’ 어려운 수사가 돼버렸다고 말해왔다.
검찰관계자는 “문기자가 가지고 들어올 노트북 컴퓨터를 복원시켜 사신의 내용을 확인하면 작성 동기와 경위가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귀국직후 취재진에 둘러싸인 문기자는 ‘빈 손’이었다.
검찰은 다른 경로로 문기자의 컴퓨터를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문제의 사신을 확보할 수 없다면 검찰은 문기자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해 ‘휴직중인 기자가 왜 6월말이라는 미묘한 시점에 언론장악 문건을 만들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당시는 홍석현(洪錫炫)중앙일보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보광그룹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사찰이 임박한 시점이었다.
▼제3자 개입 여부▼
문기자는 귀국직후 “개인 소신을 정리한 것일 뿐 제3자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부총재는 4일 검찰조사에서 “문기자가 모 언론사 간부와 상의했다”는 ‘제3자 개입설’을 진술했다. 이부총재의 최상주(崔相宙)보좌관도 그같은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이부총재측은 “문기자가 제3자 개입을 시인한 녹취록이 있다”는 말까지 했다가 검찰조사에서 “녹음기기 조작 실수로 녹음되지 않았다”고 번복했다.
문건 작성 동기에서는 비슷한 입장을 보이는 문기자와 이부총재측이 ‘제3자 개입’ 의혹에서는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는 셈이다.
문건 작성에 제3자가 관여한 것이 드러날 경우 언론장악 대책이 조직적으로 준비됐음을 입증하는 것임으로 이 사건의 파장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기자의 귀국직후 발언이 검찰에서도 유지되고 그것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이부총재측은 녹취록 발언 번복에 이어 또한번 궁지에 몰리게 된다.
▼뒤늦게 귀국한 배경▼
문기자의 귀국이 늦어지자 검찰 주변에서는 “문기자가 검찰조사를 피하는 것은 이부총재와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문기자가 개인의견을 정리해 평소 친분있는 이부총재에게 전달한 것이 사건의 전말이라면 검찰 출두를 미룰 이유가 없다는 것.
문기자는 이부총재가 국가정보원장으로 재직할 때에도 외교현안 등에 대한 각종 정보를 보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기자는 결국 귀국을 택했다. 그의 귀국이 이부총재를 비롯한 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아니면 야당에 유리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가 자진 귀국을 택한 배경이 무엇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가 순수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귀국한 것인지, 보다 복잡한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검찰조사 결과가 드러나면서 윤곽이 잡혀갈 것으로 보인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