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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오래된 정원(268)

입력 | 1999-11-10 19:58:00


그 해 가을, 정확하게는 시월 중순에 정희가 결혼했다. 상대는 물론 군의관 갔다가 제대한 박형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동생이 근무하는 대학병원 근처의 카페로 가서 그애를 만났다. 박형은 학위 때문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 정희와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내가 정각에 도착했는데도 동생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앉아있었다.

너 오늘 웬일이니, 한가한 모양이지?

오늘 모처럼 박 형 수술이 없는 날이래. 먼저 나가 있으라구 그랬어.

정희는 그전 보다는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전에는 눈가에 피곤한 주름이 잡혀 있거나 때 묻은 가운을 아무렇게나 구겨 입은채로 나오는 적도 있었고 대개는 바지 차림일 때가 많았다. 그맘 때에 정희는 막 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여자 나이 스물 일곱이면 그리 적은 것도 아니었지만 정희는 아직도 대학 초년생 같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이었다. 나 보다는 얼굴이 좀 통통하나 편이었고 여자다웠다고나 할까. 정희의 눈과 입술을 보니 나오면서 새로 화장한 듯했다. 나는 여전히 아무렇게나 머리를 묶고 물감 묻은 청바지에 얇은 카디간 차림이었지만, 정희는 검은 원피스에 목걸이와 귀걸이까지 하고 있었다.

얘 난 그냥 차나 한 잔 하구 가야겠다.

왜 그래. 박 형이 모처럼 저녁 산다는데.

글쎄 내가 끼어두 되나 몰라.

실은 우리…언니한테 할 말이 있어.

나는 그 무렵에 개인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내 자신 속으로 몰두할 일거리를 찾지 않으면 나는 폭발해 버리거나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였다. 은결이는 제법 지각 있는 말을 종알거릴 정도로 자랐다.

나 결혼할 거야.

정희가 말했고 나도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당연하잖아. 그 사람 제대두 했구 직장도 생긴 셈이니까. 어머니껜 말씀 드렸니?

어머니가 먼저 꺼내셨어. 지난 달에 양가 부모님도 만나 뵈었구 날짜도 잡아 놨어.

어머, 이런 고얀 것들이… 느이들 그러니까 나만 쏙 빼놓구 인제 마지막 통고하는 거야. 언제지, 날짜가?

이 달 십 육일.

겨우 두 주 남았잖아.

미안해… 우리가 먼저 치르게 되어서.

나는 픽 웃고나서 담배를 붙여 물었다.

미안하긴… 전에두 얘기했지만 난 똥차 아니니? 하여튼 축하한다.

엄마가 나 보구 말하래.

공연히 주위에서 수근수근 조심스러워 하는 기색이 느껴지자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기분이 슬슬 상했다.

어머니는 이럴 때 보면 참 구식이구나.

정희는 찻잔에 루즈가 묻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입술을 모으고 마셨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순응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 세상의 원칙이라면.

언니 나 결혼하면…집으루 들어와.

응, 그렇게 되나?

집엔 엄마하구 은결이만 남게 되잖아.

새 봄이면 고것이 벌써 다섯 살이구나. 유치원에라두 일찍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