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의 예언을 피할 수 없었듯이, 모든 비극은 처음부터 잉태된 운명의 씨앗에 의해 진행되는가? 극단 신화가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올리는 ‘사랑’도 이같은 운명적인 비극을 다뤘다. 24∼12월19일 서울 종로5가 연강홀.
“아름답고 희망을 주는 사랑도 있지만, 고통과 파멸을 주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연출가 김영수는 작가 오은희와 함께 대본을 다섯번이나 수정하는 등 꼼꼼하게 희곡을 완성했다.
대학 2학년 때 자신의 육체를 더듬는 새어머니를 피해 집을 뛰쳐나온 진영. 새어머니는 자기환멸 속에 자살하고, 진영에게 이 경험은 평생 짐으로 남는다.
미국으로 유학간 진영은 이제 더이상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성들을 밀쳐낼 용기가 없다. 때마침 저돌적인 사랑으로 다가오는 지희에게서 새어머니의 환영을 발견한 진영은 한국으로 도망치듯 돌아오고 열두 살 연상의 무용가 여진을 만난다. 진영은 이제 모녀를 동시에 사랑하는 남자가 되고 파국을 맞는다. 리얼리즘 연극이란 배우들이 진지한 대사와 연기로 감정이입을 극대화시키는 작품. 관객이 몰입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적인 구성, 현실과 혼동할 정도의 연기가 생명이다. 그래선지 윤소정(여진) 박지일(진영) 전현아(지희) 등 연극계에 소문난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극단 신화는 97년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공연 시간이 세 시간이 넘는 대형무대에 올렸으며,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등 서민극 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월 3시, 화수금토 4시 7시반, 일 3시 6시. 2만∼3만원. 02―923―2131
〈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