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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Arts]영원한 '대부' 알 파치노

입력 | 1999-11-11 19:50:00


알 파치노는 매우 대담한 배우이다.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데 필요하다면 한없이 처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없이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명등 아래를 벗어나는 순간 그가 수줍음 덩어리로 변한다는 사실은 이미 전설처럼 되어 있다. 어떤 파티에서 그를 본 적이 있는데 그는 조용한 구석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더니 파티가 끝날 때까지 내내 그곳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우연히 자기 옆으로 다가온 사람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을 뿐 계속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인터뷰를 무서워한다는 사실도 할리우드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파치노는 예전과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그가 설립한 독립 프로덕션인 챌 프로덕션을 찾아갔을 때, 그는 맨해튼의 오후거리가 내다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을 배경으로 즐겁고 따스하게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파치노는 13세 때 사우스 브롱크스의 텅텅 비다시피한 극장에서 ‘갈매기’라는 연극을 처음 본 것이 연기수업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그 후 그는 공연예술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16세 때 자퇴하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년 뒤 줄리안 베크와 주디스 말리나가 운영하던 실험적인 극단인 리빙 시어터에서 무보수로 무대 뒤의 잡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영화를 찍는 틈틈이 정기적으로 무대연극에 출연하고 있다. 그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을 “줄타기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영화 속에서 파치노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작품은 ‘대부’였다. 하버드에서 교육받은 마이클 콜리오네 역을 맡은 그는 처음에 너무나 조용한 연기를 보여준 나머지 하마터면 다른 배우로 교체될 뻔했다. 그러나 영화를 제작한 파라마운트사의 중역들은 그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보고 그를 교체하라는 주장을 철회했다.

이 장면에서 파치노는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두 사람을 바로 눈앞에서 쏘아 죽인다. 그러나 이 장면의 진짜 액션은 파치노가 총을 쏘기 전에 일어난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총을 쏠 용기를 얻기 위해 마음을 다지는 동안,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서 검은 눈동자가 미친 듯이 빠르게 움직인다. 그런 눈동자를 보면서 관객들은 마치 그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그의 긴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콜리오네가 앞으로 권력을 잡고 인간적인 면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잃어버리게 되리라는 것이 한 순간에 예견된다.

▼ "당당하게 나설때 올것" ▼

미국의 남자 배우들 중에는 잔인해지기 일쑤인 남성적인 힘의 위계질서를 헤치며 살아가는 남자의 모습을 뛰어나게 표현한 배우들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존 웨인은 거친 남성의 대명사이고,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제임스 딘은 매우 여리고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같은 남자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파치노는 거친 남자의 연기도, 소년 같은 남자의 연기도 모두 똑같이 잘 해내는 독특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재능에 관한 질문을 던졌을 때 파치노는 단순히 겸손해서가 아니라 아예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성상이니 뭐 그런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이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는데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사실 파치노는 연기를 잘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가 자신의 연기에 대해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아니, 어쩌면 그는 자신의 수줍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미 대답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는 아직도 수줍음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야 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가 오면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없어요.”

(http://www.nytimes.com/libr

ary/arts/091299ns―pacino―film.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