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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 칼럼]100년전의 한국과 교육

입력 | 1999-11-12 19:46:00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대가 열린다고 모두 미래를 내다보기에 바쁜 이 시점에서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인 1899년 조선을 돌이켜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으리라. ‘장밋빛 내일’을 설계하기보다는 역사로부터 냉엄한 교훈을 찾는 것이 더 가치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대한제국 3차연도였던 1899년은 그동안 여러 곳에서 진행됐던 외국인의 조선에 대한 이권침탈이 절정에 이르렀던 해였다. 막대한 이권이던 경인철도부설권이 일인에게 넘어갔고 서대문∼홍릉 전차운행권이 미국인에게 넘어간 것이 모두 이 해에 겪은 조선의 고난을 상징적으로 말해줬다.

◆역사의 교훈 아직 생생

더욱 중요하게, 유럽 제국주의의 이론적 도구로 1890년대 이후 조선의 지식인사회에 전파된 ‘사회진화론’이 맹위를 떨치기에 이르렀다. 마치 생물세계의 생존경쟁에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해 적자(適者)는 살아남고 부적자는 자연도태되듯, 인간세계의 생존경쟁에서도 우승열패의 논리가 지배해 우월한 자가 승리하고 열등한 자가 패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는 취지였다. 이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지배를 정당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그래서 조선의 지식인들 가운데서는 열강의 조선 침탈을 ‘미개하고 힘이 없는’ 조선이 운명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패배주의적 분위기가 번지기도 했고, 반면에 교육을 통해 국민을 각성시켜 민족의 힘을 길러 맞서야 한다는 자강론(自强論)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당대의 한 유력 지식인이 1899년 2월 “민족의 피가 새로운 교육에 의해 바뀌어야 한다”고 썼던 것은 의미가 컸다.

역사는 정녕 되풀이되는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국민적 기업들’이 자꾸만 해외로 팔려가고 있다. 시장개방률은 무려 98%에 이르러 외국인의 경제적 진출은 몇해 전에 비해 엄청나게 활발해졌다. 덕분에 외화가 들어와 국가부도의 위기는 면했지만, 아무리 ‘국경 없는 세계’가 열린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이래도 좋은가 하는 걱정이 따른다.

다른 한편으로 한 국가 안에서의 무자비한 약육강식적 경제운용과 선진경제대국들의 대외적 경제지배를 뒷받침하는 ‘신(新)자유주의론’이 지성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19세기 말에 제국주의의 침략을 합리화했던 ‘사회진화론’이 유입됐던 역사를 연상시킨다. 그리하여 19세기 말에 ‘자강론’이 새로운 신(神)으로 등장했듯이 20세기 말에는 ‘경쟁력 높이기론’이 새로운 신으로 자리잡았다.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상대방에 대해 경쟁력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온 사회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느 무엇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가 굳어진 것이다.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살벌함과 비정함은 바로 ‘경쟁의 신’이 등장한 이후 극심해졌다.

◆학교 시장논리 벗어야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다. 영어로 성립되지 않는 콩글리시 ‘경영 마인드’라는 국적없는 비어(非語)가 교육현장에 유행하는 현실에 상징적으로 나타났듯, 경제논리가 교육논리를 압도한다. 배움의 길에 들어선 학생은 소비자로 불리고 가르침의 주체인 교사는 공급자로 불리는 가운데 ‘소비자 중심의 교육론’이 아무 거리낌없이 통용된다.

세속과는 구별되는 엄숙한 그 무엇이 존재해야 할 학교는 철저한이익추구의논리가지배하는 시장처럼 돼버린 것이다.

물론 학교 경영에 현대적 기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시장논리, 공급자와 소비자의 논리로 표현할 필요가 있겠는가. 오늘날 국가적으로 크게 우려되는 학교의 황폐화는 바로 이 섣부른 시장논리에 의해 가속화된셈이다. 경제논리가 교육논리를 조롱하는 상황에서, 100년 전에 제기됐으나 오늘날에도 타당한 명제, 즉 ‘교육을 통한 민족의 재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 것이다. 교육은 교육다워야 한다. 학교는 시장이 아니며, 따라서 사제관계가 지식을 매개로 하는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아니다. 학교를 서툰 경제논리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 교육과 학교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학준(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