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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미스터]"결혼은 노…동거는 예스" 실험커플 증가

입력 | 1999-11-14 18:49:00


《지난달 프랑스 하원은 동거커플에게 결혼부부와 똑같은 사회적 법적 세제상의 복지혜택을 보장하는 시민연대협약(PACS)법안을 최종 확정했다. 30세 이하 커플의 50%가 ‘법적관계’없이 살고 있으며 전체 신생아의 36%가 혼외출산으로 태어나는 나라. 마침내 동거커플이 ‘또하나의 가족’으로 인정된 것이다. 동거나 혼외출산이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 6월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발표된 유럽통계에 따르면 유럽의 30세 이하 커플 중 동거커플은 32%로 70년의 8%보다 4배 이상 늘어났다. 동거,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젊은층일수록“혼전동거가능”▼

90년대 들어 우리나라 대학가에선 동거커플이 자신들의 둥지를 공개하는 행사로 결혼한 부부의 ‘집들이’를 빗댄 ‘방들이’란 밀어(密語)가 떠돌기 시작했다. 최근 공영방송 KBS의 드라마 ‘초대’엔 동거커플이 주요인물 중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동아일보 미즈&미스터팀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전국의 20∼50대 성인 600명에게 ‘동거에 대한 실태와 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가 동거 경험이 있으며 58%는 혼전동거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특히 20대는 72%, 30대는 66%가 ‘그렇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안호용교수(사회학과)는 “경제적 이유나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미룬 ‘미혼(未婚)동거’는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엔 결혼의 대안으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비혼(非婚)동거’가 시도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즉 미혼동거는 여러가지 이유로 결혼 그 자체를 유예한 것이기 때문에 ‘질적’ 부부관계는 결혼에 가깝다. 이에 비해 비혼동거는 평등한 관계에서 협약을 통해 가정의 룰을 정하는 등 ‘전통적’ 부부관계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비혼동거 라이프▼

A방송사 PD인 P씨(31·서울 마포구 서교동)는 지금의 아내인 K씨(27)와 97년 결혼하기 전 1년간 동거했다. 이들은 철저한 ‘독립채산제’. 동거기간은 물론 결혼한 뒤에도 통장을 따로 관리한다.

“세금은 내가 내고 아내는 시장을 본다. 월급이 많은 내가 생활비의 70%쯤 부담한다.”(P씨)

4개월 전 직장을 그만둔 K씨는 요즘 적금해약을 고려 중. 이달 남편에게 50만원을 빌렸기 때문이다. 그는 “우린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공동체일 뿐”이라며 “앞으로도 남편의 경제력에 의지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 S대에 재학중인 Y씨(25)는 1년 전부터 중학교 여자동창과 동거하고 있다. 돈은 각자 관리하지만 오전에 시간여유가 있는 Y씨가 아침식사 준비는 물론 파트너의 도시락도 챙긴다. 저녁요리는 파트너의 몫이다.

▼왜 동거인가▼

“이들은 결혼 ‘제도’보다는 둘만의 관계에 더 충실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정이 사라지면 헤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결혼제도는 번거로울 수 있지요.”

상명대 최연실교수(가족복지학과)의 분석. 또 성관계 후 남녀 사이에 남성은 지배, 여성은 종속이라는 ‘권력관계’가 사라지는 등 성의식이 변화하는 것도 주요한 이유라고 설명.

‘살아보고 결혼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중상류층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약혼전 동거’를 보고 문화충격을 받은 이정옥씨(48·전KBS아나운서)는 2년전 ‘살아보고 결혼합시다’란 책을 쓰기도 했다.

“연애중엔 상대가 가정생활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는게 여성 애니메이션 작가 C씨(30·인천 남구 도화동)의 말. 그는 96년 이혼한 뒤 W씨(28)와 1년간 동거하다 지난해 결혼했다.

▼‘또다른 가족’?▼

동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일탈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회에선 우리에게 일탈자라는 꼬리표를 붙였다”고 털어놓는다. 결혼으로 ‘해피엔딩’한 이들은 사회적 압력에 못이겨 식을 올렸다고 부연설명을 붙이기도 한다. 동거가 사회질서 유지에 기본이 되는 결혼제도를 위협한다는 시각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법률혼 중심이기 때문에 동거여성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소수를 제외하면 동거커플의 관계는 대등하지 못한게 현실이구요.”

숙명여대 여성문제연구소의 김영란박사(사회학)는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한 실험적 시도는 ‘실험’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연실교수는 “사실혼을 떳떳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풍토가 있지만 세계적 큰 흐름은 동거 편부모가정 등 가족의 다양한 형태와 구성원으로 이뤄진 ‘멀티 패밀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하나의 가족’제도로서의 동거는 이미 우리곁에 와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