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이 체험을 바탕으로 쓰는 이 칼럼은 매주 월요일 게재됩니다. 10대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는 청소년보호위원회(02―735―6250)로 연락하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엄마 나 휴대전화 사주세요.”
“그건 안돼.”
“왜 안 되는데요?”
“고등학생한테 휴대전화는 안 어울려. 그건 바쁘게 사업하는 사람들이 쓰는 거지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해당이 안되는거야.”
“다른 애들은 다 갖고 있는데요. 정보 통신시대인데….”
“엄마는 휴대전화를 사준 부모가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안돼.”
딸은 얼굴을 붉히며 방문을 꽝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가버렸다.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며칠 뒤 수연이는 시키지 않은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며 착한 딸로 비치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엄마는 ‘조것 무슨 속셈이 있어 그러겠지’ 하면서도 착하게 굴 때마다 고마운 시선을 보내주었다. 아니나다를까 수연이는 또 졸라댔다.
“엄마, 나 정말 휴대전화 하나 사주세요. 친구들하고 어울리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이제 공부도 열심히 더 잘하고,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해서 낭비도 하지 않을게요.”
간청하는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공부 이야기며, 착한 짓이며, 통화료 걱정까지, 어쩌면 엄마 마음을 잘도 꿰뚫어 보고 있어 놀라울 뿐이었다. 이렇게 나오는 딸에게 더 이상 딱 자르기는 어려웠다.
“엄마 마음은 전과 똑같지만 아버지랑 할머니께 여쭈어볼게.”
엄마는 그날 저녁 남편과 시어머님이 계신 자리에서 말문을 열었다.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후 남편은 딸편을 들었다.
“글쎄, 시류가 그러면 사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같은데…. 관리를 잘하고 사주는 쪽으로 연구해 봅시다.”
남편이 반대하면 그 핑계를 대고 안 사주려 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어머님은 어떠세요?”
마지막으로 시어머님의 의견을 구했다. 그런데 한수 더 뜨시는 것이 아닌가.
“얘, 요즘 애들 다 그거 들고다니더라.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도 들고다니는데 아이들이야 오죽하겠니?”
엄마는 할 수 없이 품위있게 사용하고, 공부 게을리하지 않고, 통화는 최소로 할 것을 다짐받고 딸에게 휴대전화를 사주었다. 수연이는 뛸 듯이 기뻐하며 서약서와 감사의 편지를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이 사연은 라디오 방송에 소개된 엄마의 편지를 듣고 필자가 다시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을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모녀사이에 튼튼하게 구축된 사랑과 교육적 엄격함이 주는 교훈 때문이다.
딸의 행동은 부모의 사랑과 엄마에 대한 깊은 신뢰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다. 엄마의 교육적 배려나 엄격함은 바로 그 사랑과 믿음 때문에 큰 힘을 발휘하게 됨을 보여준다.
자식에 대한 정성어린 사랑과 교육적 엄격함이 조화를 이룰 때 가정교육은 바로 설 수 있다.
김광웅(청소년복지학회 회장·숙명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