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에너지 절약을 위해 48년 도입된 동절기(11∼2월) 공무원 오후 5시 퇴근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각종 민원업무가 오후 5시면 끝나 시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는데다 “51년 전에 난방연료가 부족해 도입한 제도를 21세기까지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에너지 절약과 공무원 사기를 고려해 조기퇴근제가 꼭 필요하다”며 이 제도가 거론되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 민원인 불편 ▼
11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1층 민원봉사실. 시청직원이 정보검색을 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다가가 “업무가 끝났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말했다.
민원인들이 “이제 5시밖에 안됐다”고 의아해 하자 이 직원은 “겨울철에는 공무원 퇴근시간이 앞당겨진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각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종합접수실과 등기소 직원들이 철제 셔터를 내리고 모두 퇴근했다. 동절기 공무원 조기 퇴근제를 모르고 법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는 시민이 오후 6시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 존폐논란 ▼
동절기 공무원 조기 퇴근제는 48년 정부 수립 당시 도입됐다. 60년대 후반에 폐지 논의가 일었으나 70년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난방비 절감 차원에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조기퇴근제가 명시됐다. 에너지 파동은 곧 지나갔지만 어느 공무원도 이 제도를 유지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태.
그러나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실제로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는 공무원은 얼마 안된다. 따라서 난방비 절약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도 미지수.
12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의 한 경제부처. 오후 8시가 넘었는데도 과가 많은 곳은 과원 전체가, 적은 곳에도 한두 명의 직원이 남아 일을 하고 있었다.
한 과장은 “일이 많아 항상 직원 몇명은 늦게까지 남아 근무하기 때문에 조기퇴근제로 인한 난방비나 전기 절약 효과는 거의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선 지방자치단체의 민원 관련사무실, 교육훈련 담당 부서 중에는 오후 5시에 업무를 끝내는 곳이 많다.
이 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공무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조기퇴근제에 따라 동절기 공무원의 법정 근무시간은 △평일은 오전 9시∼오후 5시로 1일 7시간(중식시간 제외) △토요일은 오전 9시∼오후 1시로 주당 38시간이다.
현재 88만명의 공무원은 물론 행정기관 관련 업무가 많은 정부 산하기관도 조기퇴근제를 실시하고 있어 대상자가 20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 당사자 입장 ▼
산업자원부의 한 과장은 “부족한 에너지 때문에 수십년 전에 도입한 제도가 21세기까지 이어진다는 게 어색하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누가 굳이 이 제도를 건드려 제살을 깎으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행정자치부 배흥수(裵興秀)복무조사담당관은 “동절기 조기 퇴근제는 에너지 절약, 여직원의 귀가길 안전문제, 공무원 사기진작 등 여러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며 “조기퇴근제를 실시해도 공무원의 연간 근로시간이 민간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공무원 사기진작을 위해 근무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면 지금처럼 난방비 절약이란 구차한 논리에 근거하지 말고 아예 연중 내내 공무원 근무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여 달라는 요구를 정부가 수년째 거부하자 10월 말 국회에 입법청원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이기홍·서정보·이명건기자〉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