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이 지나자 사탄이 감옥에서 풀려나 백성을 미혹하고…”(신약 요한계시록 2장8절)
영화 ‘엔드 오브 데이즈(End of Days)’는 이같은 성경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 2000년1월1일 0시 직전 사탄이 특정의 여성을 범하면 그리스도에 의해 갇혀 있던 지옥문을 열고 나와 새천년을 지배하게 된다는 전제 아래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탄의 지배에 들어갈 운명에 처한 인류. 근육질의 액션 스타 아놀드 슈워제네거(52)가 이같은 사탄의 위협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인류를 구하는 역을 맡았다.
영화는 1979년 교황청의 한 신부가 창 밖으로 달 위를 지나는 혜성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같은 날 뉴욕 맨해턴의 한 병원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난다. 교황은 사탄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라고 하지만 강경파 신부들은 “아이를 죽여 악의 씨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탄'특수효과 볼만▼
그로부터 20년 후인 1999년 뉴욕. 경호요원인 전직 형사 제리코 케인(아놀드 슈워제네거 분)은 가족을 잃은 뒤 알코올에 의지해 살아간다. 어느날 경호임무 중 저격범의 뒤를 좇고 그의 아지트를 수색하던 중 한 여자의 사진을 발견한다. 그의 이름이 크리스틴(로빈 튜니 분)임을 알아낸다. 사탄이 노리는 이 여자는 매일 밤 사탄으로부터 겁탈당하는 악몽에 시달린다.
뉴욕 맨해턴 타임스퀘어에 모여든 군중이 새천년의 초읽기에 열광할 때 케인은 크리스틴을 보호하기 위해 사탄(가브리엘 번 분)과 사활을 건 마지막 격투를 벌이는데…. 주인공으로 슈워제네거가 일찌감치 낙점됐지만 사탄 역을 놓고 제작사측은 고심했다. 결국 이지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브리엘 번이 캐스팅됐다. ‘유주얼 서스펙트’(95년)에서 개성적인 연기를 보여 준 그는 “진짜 사탄이 있다면 저럴 것”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실감나게 연기했다.
감독과 촬영을 함께 맡은 피터 하이암스는 “누구도 의심치 않을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세기말적 공포를 그려내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에일리언’‘터미네이터2’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특수효과의 귀재 스탠 윈스톤이 인류를 집어삼킬 듯한 공포와 위용을 지닌 사탄의 형상을 만들었으며, 으스스한 지하 사탄의 사원을 만들기 위해 폐허처럼 버려진 역을 개조하기도 했다.
▼액션-공포-섹스 뒤섞여▼
이 영화는 세기말 인류에게 죽음과 생명, 선과 악의 의미를 생생하게 묻는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공할 폭력과 에로틱한 섹스장면, 전율할 공포와 거듭되는 반전이 두루 들어 있는 스릴러이기도 하다. 그러나 폭력과 공포가 지나쳐 종교적 의미를 생각할 여유를 주지않는 게 흠일 듯하다. 12월4일 개봉.
〈뉴욕〓윤정국기자〉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