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태는 아래는 환자복에 티셔츠를 걸치고 탁구에 열중해 있었다. 다른 환자와 공을 주고 받던 영태가 그를 향해서 마주 걸어가는 나를 보고 먼저 배트를 놓고 물러났다. 그가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좋아 보이는데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송은 나를 이끌고 병원 본관 앞의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는 들판이 멀리 내다보이는 나무 아래 벤치에 가서 앉았다. 나는 그 전에 송영태가 군대와 감옥을 거치는 동안에 결핵을 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희네 병원에서 그를 만났을 때에도 폐에 동공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송이 말했다.
몸이 나빠졌대. 앞으로 한 일 년 꼼짝말구 쉬면서 약 먹어야 해.
잘됐지 뭐.
나만 쏙 빠져 나온 것 같아서 못견디겠어.
이젠 대충 끝이 났다구 보는데. 직선제루 간다잖아.
사실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달라진게 뭐가 있어.
느이들 원하는 게 뭔데?
민중이 권력을 잡는 일. 그리고 미제와 앞잡이들을 몰아내는 일이지.
너 몸이나 돌봐라. 나는 그저 현우씨나 나왔으면 그 이상 바라는 건 없어.
아마 당분간 더 기다려야 할 걸. 반동적 과도기가 길어질지두 몰라.
친구들은 어때… 다들 잘 지내구 있겠지.
핵심들은 많이 검거됐지. 현장 쪽엔 아직두 많이 박혀있을 거야. 나는 이젠 현장은 좀 무리인 것 같아.
그래 송 형이야 이제부터 잘 먹고 잘 살면 되잖아. 누가 뭐래, 할만큼 했잖아.
공부나 열심히 해볼까.
그대의 소질이 공부에 있다는 건 누구도 부인 못할 거야. 집에서두 이젠 안심하시겠구나.
송이 눈을 꿈벅이고 있더니 무슨 티가 들어간 듯이 손가락으로 눈가를 찍어냈다. 그는 비죽비죽 울음을 터뜨렸다.
야아 사내 자식이 왜 그래.
그냥… 좀 섭섭해서….
나는 얼결에 그의 어깨에 팔을 둘러 주었는데 녀석이 내게로 상체를 구부리더니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는 그런 자세로 벤치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나 그만 가 볼게.
나는 영태의 등을 몇번 토닥여 주고나서 일어섰다. 그가 좀 쑥스러워 할까봐 나는 녀석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땅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내가 개강 준비를 하고있을 무렵에 지방의 학교로 두툼한 편지 한 통이 왔다. 겉봉을 보니 최미경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윤희 언니에게
언니, 저 미경이에요. 아직도 거기 그대로 잘 살아 있습니다. 송 선배는… 지금쯤은 언니도 소식을 알고 계시리라 믿어요. 공장에서 철야 하다가 각혈을 하고 쓰러졌어요. 우리는 송 선배 신변 문제를 놓고 논의를 한 끝에 그를 가족들에게 인계하기로 결정을 했답니다. 저는 언니에게 연락을 해드리려고 그랬는데 선배가 나중에 자기가 하겠다면서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그래서 그냥 놔두었어요. 지금쯤은 연락을 하셨을 거라고 믿어요.